제목 :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 Ex‑voto (San Sebastián) (1912)
작가 : 엔젤 자라가 (Angel Zarraga : 1886~1946)
크기 : 캔버스 유화 (185 x 134.5cm)
소재지 : 멕시코 국립 미술관(Museo Nacional de Arte, MUNAL)
스페인으로부터 가톨릭 신앙을 받은 멕시코인들은 가톨릭 신앙을 자기들의 전통인 인디언 문화와 접목시키면서도 스페인으로부터 가톨릭 신앙을 키워왔는데 성화를 일상의 신심 생활에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가령 우리나라 불교도들도 호신불이란 작은 부처를 모시고 다니면서 기도하거나 자기가 있는 곳에 보존하는 것처럼 신앙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성화를 만드는 풍속이 있었는데 가령 기도 후 질병에서 해방되었거나 아니면 다른 은혜를 받았을 때 이것을 기억하기 위한 성화를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
또 성인들의 삶을 통해 현세 삶의 어려운 순간을 이길 수 있는 신앙적 기억들을 많이한 과달루베의 성모 성지 같은 곳을 방문한 후 성지 순례의 감동을 신앙과 연관시킬 목적으로 자기 신앙 체험이 묻은 과달루베 성모 성화를 남기기도 했다.
삶의 어려운 순간에 단순한 순례의 감동만이 아닌 여기서 만난 하느님께 매달림으로서 신앙 체험을 통해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얻겠다는 마음으로 성화를 제작해서 묵주처럼 개인 신심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곤 했으며 그러기에 그 형상과 내용은 참으로 다양해서 어떤 미술관의 주요 부분은 바로 이런 성화만을 보관하는 방을 마련하기도 했다.
세바스티안 성인은 화살의 고통을 이긴 것으로 신앙의 고통과 희생을 감내한 성인으로 추앙되었으며 극심한 고통을 견딘 생애를 상기해서 질병 치유를 도우는 성인, 더 나아가서는 유럽이 콜레라의 감염으로 주민 들의 절반이 죽는 불안한 시기에 콜레라 퇴치의 주보 성인으로 모시기도 했다.
이처럼 성인은 생사의 기로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성인임과 동시 보통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희생을 하느님께 바쳤다는 영혼과 육신이 다 아름다운 용감한 성인으로 추앙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성 세바스티아노가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명령에 따라 신앙을 전파한 죄로 순교하게 될 운명에 달했을 때의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황제가 그를 사랑하기에 그를 배교시키기 위해 손과 발을 나무에 묶고 있는 동안 첫 번째 화살이 그의 몸을 관통한다. 그 순간 성인의 얼굴은 고통과 경악이 교차하며 일그러지고, 본능적으로 화살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성인은 교회를 심하게 박해했던 로마 황제 디오클레시아노의 근위대장으로 황제는 그의 고귀한 인품과 충성심으로 대단한 총애를 받던 처지였다. 그러나 그가 국가가 금지하는 그리스도 교인이 된 것을 황제가 알았을 때 그는 분노와 실망을 하면서도 성인의 인품에 매료되었던 황제는 그를 살리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 설득을 했으나 꿈쩍도 않자 그를 극심한 고통에 빠트려 배교시키기 위해 화살로서 고틍을 주면서 서서이 죽음으로 나아가게 심리적인 고통을 주기도 했으나 그는 배신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성인은 계속 이어지는 고문에 의한 고통으로 가사 상태에 빠지자, 형리들은 그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서 버려둔 것을 이레네 라는 성녀다운 마음을 지닌 자매가 집으로 모시고가서 치료해 다시 군중 앞에 나타나자 많은 사람들은 그의 귀신이 부활한 것처럼 놀라다가 황제가 다시 체포해서 순교의 영광을 받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의 돈독한 신앙심을 표현할려는 것만이 아니라 신앙으로 맺어진 인간들 안에 있는 소위 복음적 우정의 숭고한 차원을 그리고자 했다.
남녀의 관계라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문화권에서든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을 통념으로 여기고 있으며 특히 독신 생활의 가치가 강조되던 우리 교회에선 어쩔 수 없이 남녀의 관계는 어느 종교보다 더 경직된 관계로 빠지게 쉬웠다.
그래서 교회 신학은 남녀 관계에 있어 경직 일변도로 표현되거 심지어 결혼을 한 처지에서도 동정 생활에 대한 열망으로 부부 관계를 금하고 살았던 사람들을 성인으로 추앙하기도 했다.우리나라에도 이 루갈다 부부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예술적 표현은 어떤 때 종교적 차원이 진리 표현을 위해 줄 수 있는 경직성에서 벗어나 이것은 훨씬 더 하느님 뜻에 맞는 유연함으로 해석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이 작품 역시 그런 관점에서 제작된 것이다.
벌거벗은 성인의 곁에 이레네 성녀는 거의 경배하는 자세로 성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레네는 세바스티안 성인의 화살로 만신창이가 된 상처를 치유해서 소생케 했다.
여기에서 성녀는 바로 경배의 자세로 화살에 찔린 성인 앞에 기도하는 자세로 있다.
벗은 성인과 달리 성녀는 숙녀답게 단정한 검은 옷을 입고 기도하는 자세로 있다. 벌거벗은 남자와 숙녀와의 관계는 어디서도 좀 어색하게 보이는 관계 설정이나 여기서는 너무 자연스럽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진 고통과 희생도 감내한 세바스티안 성인과 이 성인이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픈 인간적인 연민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레네 성녀의 모습은 편협한 인간 심리가 만든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우리가 벗어나 크리스챤 신앙이 줄 수 있는 아름다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우정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이 성화를 모신 사람은 교회가 가르치는 남녀 관계의 위험성과 경직성에서 해방되어 하느님 안에서의 만남은 언제나 향기로우면서 자유로운 관계임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교회가 독신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생길 수 있는 경직성, 크리스챤 영성은 성에서 이탈하는 것이란 잠재적인 오해와 편견이 장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언제나 교회안에 항존하는 현실에서 이 작품은 참으로 큰 교훈을 줄 수 있는 등불과 같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