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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치운쿨라 다시 형제성으로 네 번째 이야기

 

사랑과 지혜가 있는 곳에는 두려움과 무지가 머물지 못하고, 인내와 겸손이 있는 곳에는 분노와 동요가 힘을 잃으며, 고요와 묀이 있는 곳에는 걱정과 방황이 줄어듭니다. 악습은 억압만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 깊은 덕이 그 자리를 채울 때 힘을 잃습니다. 형제를 향한 분노를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자비를 키우고, 경쟁심을 억누르기보다 다른 이의 선을 기뻐하는 겸손을 배우며, 통제 욕구를 없애려 하기보다 하느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내적 가난을 살아야 합니다.

 

형제성은 단순히 갈등을 피하는 평온한 관계가 아닙니다. 갈등 속에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형제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에는 반드시 차이와 충돌이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갈등이 생기면 침묵으로 상대를 벌주고, 거리를 두어 관계를 끝내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여 편을 만들기도 합니다. 직접 대화하기보다 마음속에서 상대를 재판하고, 오랜 시간 그의 잘못을 반복해서 기억합니다.

 

그러나 형제성은 사람에 관하여 말하기 전에 그 사람과 말하는 용기를 요구합니다. 공격하기 위하여가 아니라 관계를 살리기 위하여 다가가고, 내가 받은 상처를 과장하거나 숨기지 않고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형제의 이야기도 들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대화는 내가 옳음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진실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나의 기억만이 전부가 아닐 수 있고, 내가 보지 못한 그의 아픔이 있을 수 있으며,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르게 경험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화해는 누가 이겼는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관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서로가 조금씩 자신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때로는 내가 옳더라도 한 걸음 물러서야 하고, 나의 정당함을 끝까지 주장하기보다 형제의 마음이 다시 열릴 수 있는 말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은 진실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사랑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 없는 진실은 칼이 되고, 진실 없는 사랑은 무책임한 위로가 됩니다. 형제성은 진실과 자비가 서로 입 맞추게 하는 길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 형제는 언제나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나에게 형제들을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형제들을 모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는 자신의 계획으로 만든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신 선물이었습니다. 선물은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선택하여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선물은 주는 이의 뜻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보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형제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를 통하여 나의 숨은 교만을 드러내고, 인내를 배우게 하며, 조건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형제의 얼굴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특히 내가 피하고 싶은 형제, 이해하기 어려운 형제, 나에게 상처를 준 형제의 얼굴 안에서 주님께서는 묻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감정적으로 항상 따뜻함을 느낀다는 뜻이 아닙니다. 때로 사랑은 불편함을 견디는 일이고, 마음이 따라오지 않아도 선을 선택하는 것이며, 관계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형제성은 감정보다 깊은 결단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자연스럽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게도 존엄을 지켜 주는 것은 복음입니다. 내게 잘해 주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만, 나를 오해하고 배척한 사람에게도 평화를 건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먼 곳의 특별한 악인을 향한 명령만이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고, 내 자존심을 건드리며, 내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바로 그 형제를 향한 부르심일 수 있습니다. 원수 사랑은 그를 좋아하라는 강요가 아니라 그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미움이 나의 행동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자유입니다.

 

프란치스칸 형제성은 인간 공동체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태양은 형제였고 달은 자매였으며, 물과 불과 바람과 땅도 같은 창조의 가족이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넘치는 선성에서 태어났고, 각자의 존재로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다시 형제성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피조물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자연을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자원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함께 살아가야 할 형제와 자매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과 음식과 에너지, 버리는 물건과 소비하는 방식은 모두 형제성의 문제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기후 위기의 고통을 먼저 겪고, 말하지 못하는 피조물들이 인간의 탐욕 때문에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생태적 회심은 형제성의 필수적인 표현입니다. 피조물을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면서 함부로 소비할 수 없고,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편리함만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절제는 결핍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살아갈 몫을 남겨 주는 사랑입니다. 적게 소유하고 덜 소비하며 더 오래 사용하고 기꺼이 나누는 삶은 모든 피조물과 맺는 형제적 관계입니다.

 

형제성은 점점 넓어져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의 친밀한 사람들만 형제로 받아들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나와 다른 민족, 문화, 종교, 생각을 가진 이들도 같은 인간 가족입니다. 국경과 신분과 이념이 사람의 존엄을 나눌 수 없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전쟁 중에도 적대의 경계를 넘어 술탄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상대를 정복하거나 논쟁으로 굴복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기를 들지 않고 한 인간으로 다가갔으며,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과도 평화롭게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형제성은 나와 같은 사람들끼리 안전하게 머무는 울타리가 아닙니다. 울타리를 넘어 낯선 이에게 다가가는 용기입니다. 이방인과 이주민, 가난한 이와 소외된 이, 사회가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는 환대입니다. 환대는 남는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나누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식탁과 마음을 열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고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참된 환대는 상대를 불쌍한 대상으로 만들지 않고, 그에게서 내가 받아야 할 선물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우리의 선행을 위한 대상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에게 복음을 가르치는 스승이며,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되찾게 하는 형제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지만, 동시에 그의 삶에서 인내와 연대와 감사와 생명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형제성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위계를 무너뜨립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주고받는 존재입니다. 어떤 날에는 내가 형제를 붙들어 주지만, 다른 날에는 내가 그의 손에 의지합니다. 내가 건강할 때 병든 이를 돌보지만,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합니다. 서로 의존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형제성입니다. 아무도 자기 힘만으로 살 수 없고, 누구도 언제나 주는 사람으로 남을 수 없습니다. 받는 능력도 가난의 한 모습입니다. 사랑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형제의 도움을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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