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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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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의 길에서 드러난 부활의 방식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은 우리의 기대와 자주 어긋납니다. 인간은 확실한 증거, 눈부신 기적, 논리적 설득을 원하지만, 주님은 오히려 관계와 나눔, 그리고 내어줌의 자리에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엠마오의 이야기는 바로 그 역설적인 계시의 방식입니다.

 

인식은 설명이 아니라 나눔에서 일어납니다. 제자들은 길 위에서 긴 시간을 함께 걸었습니다. 말씀을 들었고, 성경의 의미를 풀어 설명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지적 이해는 그분을 알아보게 하지 못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 주실 때이 장면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드러내는 행위였습니다. 말씀은 귀에 닿았지만 빵을 떼는 행위는 존재에 닿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만납니다. 하느님은 설명으로 인식되는 분이 아니라, 나눔 속에서 체험되는 분입니다.

 

빵을 떼는 행위는 존재의 방식입니다. 빵을 떼는 것은 단순한 동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 전체를 요약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을 나누는 삶, 자신을 쪼개어 타인을 살리는 사랑, 소유가 아니라 내어줌으로 존재하는 방식, 이것은 성찬례의 핵심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삶의 형태입니다. 주님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처럼 나누는 삶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이유는 관계의 불꽃에서 나오는 사랑의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뒤늦게 깨닫습니다.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그 뜨거움은 정보의 결과가 아니라 현존의 흔적이었습니다. 진리는 머리를 밝히기 전에 먼저 마음을 태웁니다. 이 뜨거움은 프란치스칸적으로 말하면 관계 안에서 흐르는 선()의 에너지입니다. 하느님은 개념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흐르는 살아 있는 불이십니다.

 

일상의 식탁은 부활이 숨 쉬는 자리입니다. 엠마오의 장면은 우리 신앙의 중심을 다시 정렬시킵니다. 주님은 성전의 장엄함보다 일상의 식탁을 선택하셨습니다. 화려한 기적이 아니라 소박한 저녁 식사였습니다. 부활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을 새롭게 보는 눈입니다. 우리가 함께 밥을 나누는 자리, 조용히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순간,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그 자리에 이미 주님은 계십니다.

 

프란치스칸적 작음속에서 드러나는 부활

이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높음이 아니라 낮음, 소유가 아니라 나눔, 설명이 아니라 관계, 성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걸었던 길처럼, 주님은 언제나 작아지는 자리에서 인식됩니다. 빵을 떼는 손, 나누는 마음, 함께 머무는 시간, 그곳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는 자리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우리 곁을 걸어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알아보지 못한 채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누군가와 함께 나눈 작은 빵 한 조각 속에서 문득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분은 늘 우리와 함께 계셨다.”

 

사랑은 언제나 머무름의 깊이만큼 자비로워집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다시 보기 시작할 때, 판단 대신 머무르고, 단정 대신 기다릴 때, 우리의 눈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거칠게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이해되기 시작하고, 이해되던 것이 연민으로, 연민은 마침내 사랑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고치기 전에 먼저 다시 바라보십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멀리서 관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인간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베들레헴의 구유는 하느님이 인간을 다시 본 자리가 아니라 인간 안에서 바라보기 시작하신 자리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로 내려오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방어할 수 없는 모습으로, 자기를 지킬 수 없는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그 연약함 안에서 하느님은 자신을 완전히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영성은 언제나 역설입니다. 강함이 아니라 약함 안에, 능력이 아니라 무능 안에, 확신이 아니라 내어맡김 안에 하느님의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능력은 드러나는 힘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사랑의 깊이입니다. 우리는 개념과 사랑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론과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람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상이 아니라 사람이 되셨고, 명제가 아니라 얼굴이 되셨으며, 논리가 아니라 아기가 되셨습니다. 그 연약한 얼굴 안에서 하느님은 가장 완전하게 드러나셨습니다. 하느님은 높은 곳에서 세상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낮은 곳에서 우리를 다시 보십니다. 그리고 그 시선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이미 사랑받고 있음을 깨달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내면에서 깊이 알아봅니다. 빵을 뗄 때 숨어계신 주님의 현존을 알아봅니다. 동반과 부축의 팔로 자신을 내어주는 거기에 부활하신 분의 현존이 있습니다. 관계의 현장에서 사람은 사람과 사랑에 빠집니다. 사랑에 빠지는 관계에 말로 선의 흐름이 있는 곳이며 선의 흐름이 있는 거기에 하느님 나라의 현재가 있고 부활하신 분의 현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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