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연결시켜 묵상하면 이런 뜻이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와 눈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사랑이고,
길,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에 떨어지는 씨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밭에 씨가 떨어져도 싹이 트고 자랄 수 있으려면 비가 와야 하듯
하느님 말씀도 자라서 열매를 맺으려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필요한데
하늘의 하느님께서는 땅인 우리에게 비도 주시고 씨앗도 주시어
그 씨가 우리 안에서 자라 열매 맺게 하신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씨도 주시고 비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헌데 이 말씀에는 우리가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하면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시지만
우리가 잘못하면 은총을 거두실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기도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비를 가려 주시지도 않고,
우리가 잘못한다고 한 번 주신 은총을 거두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과 비를 주신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을 그저 마냥 좋아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선한 사람이라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햇빛과 비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악한 사람이라면 햇빛과 비를 싫어하고 무시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악한 사람을 생각하니 딱 떠오르는 것이 바로 아스팔트 길바닥입니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어느 날 버스를 기다리다가
오는 비와 내린 비가 아스팔트길을 그대로 흘러가버리는 것을
하염없이 그리고 물끄러미 보며 상념에 젖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문득 나도 그 많은 물을 하나도 흡수치 않고 흘려버리는 아스팔트처럼
하느님의 사랑 넘치는 말씀을 흘려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가 얘기하는 바로 그 길바닥이 저였고
하느님 은총의 낭비자인 악한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런데 아예 씨를 받아들이지 않고 흘려버리는 길바닥은 아니어도
씨를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돌밭의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 중에서 이런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는데 하필 그 해에 집안에 안 좋은 일이 겹으로 생길 때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케 되고 하느님의 말씀은 뿌리 채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열매 맺지 못하는 면에서는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의탁치 못하는 경우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주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아무리 간곡히 말씀해주tu도
이 세상 근심걱정꺼리가 생기면 그 하느님 말씀이 내 마음에
언제 있었나 싶게 일순간 저 멀리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는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아무리 간곡히 말씀하셔도
이 세상의 작은 걱정꺼리 하나에 하느님 나라는 날아가 버리는 겁니다.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고 온 게 아닐까 하는 쓰잘 데 없는 걱정에
하느님 나라에 관한 그 심오한 얘기는 먼 나라 얘기가 되고 마니
진짜 크나큰 걱정꺼리가 생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은 어떤 땅입니까?
어제는 성체성가로 180번을 노래했는데 오늘 말씀을 묵상 중이어서인지
2절의 가사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내 마음은 주님이 가꾸시는 작은 정원,
봄비처럼 은총을 내게 내려 주옵소서.
땅속 깊이 스미어 새 생명이 자라듯
나는 당신 사랑에 곱게 젖어 가옵니다.”
그러니까 좋은 땅이란
교만은 부서지고,
욕심은 쫓겨나고,
걱정은 사라져서
봄비처럼 나리는 은총이 깊이 스며들고
곱고 곱게 젖어드는 그런 부드러운 마음일 겁니다.
씨뿌리기 전에 땅을 갈듯
이런 마음 갈이를 하리라 다짐하는 오늘이고,
은총으로 적셔주시기를 기도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