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루카 7,31-35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장터의 변덕스러운 아이들에 비기십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다.”
무엇을 해 주어도 트집을 잡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금욕하며 오자 “마귀 들렸다” 하고,
사람의 아들이 먹고 마시며 오자 “먹보요 술꾼”이라 합니다.
이렇게 오든 저렇게 오든, 처음부터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갈라짐과 트집’의 정신입니다.
트집을 잡기로 작정한 마음은 언제나 트집거리를 찾아냅니다.
은총에 응답하는 대신 장터의 게임만 벌이는 것입니다.
이 끊임없는 트집이 공동체를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진리는 장터의 말싸움으로 증명되지 않고,
‘그 열매(자녀·삶)’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기리는 두 순교자가 바로 그 ‘지혜의 자녀’입니다.
모진 박해와 쓰라린 분열의 시대에,
고르넬리오 교황과 치프리아노 주교는
장터의 트집 게임에 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바쳐(순교) 진리를 ‘열매로’ 증언했고,
무엇보다 ‘일치’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 시대의 큰 물음은 이것이었습니다.
‘박해 때 배교했다가 뉘우친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엄격주의자들은 “영영 내치라” 했지만,
두 목자는 “교회는 뉘우치는 자녀를 다시 품는 어머니”라며,
자비와 함께(참회를 통하여)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교부들이 그러했듯,
참된 목자는 넘어진 양 한 마리도 ‘버리지’ 않습니다.
아낌 주간의 눈으로 보면
여기에 두 가지 아낌이 있습니다.
첫째, ‘넘어진 한 사람을 낭비하지 않는’ 아낌입니다.
실패한 이를 손쉽게 내치는 대신, 되찾아 품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의 하나 됨을 낭비하지 않는’ 아낌입니다.
트집과 분열로 공동체를 갈라 낭비하지 않고, 일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서 마지막에 “선을 행하다 지치지 맙시다”(갈라 6,9) 하고 권합니다.
두 순교자는 끝까지 지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해 주어도 ‘트집 잡는’ 장터의 마음은 아닌가?
나는 진리를 ‘말싸움’이 아니라 ‘삶의 열매’로 드러내는가?
나는 넘어진 한 사람을 ‘내치는가, 되찾아 품는가’?
나는 공동체의 ‘하나 됨’을 지키려 애쓰는가?
주님,
트집과 분열의 마음을 거두어 주소서.
진리를 삶의 열매로 드러내게 하시고,
넘어진 이를 되찾아 품으며 교회의 일치를 지키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