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6,24-28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
주님의 이 말씀은 자기 학대가 아닙니다.
‘거짓 나’를 버려 ‘참 나’를 찾으라는 부르심입니다.
내가 움켜쥔 헛된 자아를 놓을 때,
비로소 하느님 안의 참된 내가 살아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길을 누구보다 절절히 살아 낸 사람입니다.
그는 명예와 쾌락이라는 ‘온 세상’을 좇았지만,
그 모든 것을 얻고도 마음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당신 안에 쉴 때까지 저희 마음은 쉬지 못합니다.”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
이 말씀은 곧 아우구스티노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사랑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서야,
곧 하느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고서야 쉼을 얻었습니다.
오늘 기리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 복음을 마지막에 가장 깊이 살아 냈습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 가운데 하나였지만,
생애 끝에 깊은 신비를 체험한 뒤
자신의 방대한 저술을 ‘지푸라기’라 불렀습니다.
평생 쌓은 ‘지적 생명’마저
하느님 앞에 기꺼이 내려놓은 것입니다.
바로 ‘자기 목숨을 잃어 목숨을 얻는’ 그 길입니다.
그가 ‘이성과 신앙’을 그토록 깊이 화해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성을 우상으로 삼지 않고
끝내 신비 앞에 겸손히 무릎 꿇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열매의 관점에서 보면
아퀴나스는 평생의 연구로 ‘성실’을 살았고,
‘말 없는 황소’라 불릴 만큼 ‘온유’하고 겸손했으며,
자신을 비워 ‘절제’의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큰 지성이 가장 깊이 자신을 버린 것 ―
그것이 오늘 복음의 영광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거짓 나’를 움켜쥐고 있지 않은가?
나는 ‘온 세상’을 좇느라 참된 목숨을 잃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내가 가장 자랑하는 것마저 그분께 내려놓을 수 있는가?
나의 이성과 재능은 신비 앞에 겸손한가?
주님,
거짓 나를 버려 참된 나를 찾게 하소서.
‘온 세상’보다 당신을 택하게 하시고,
제가 가장 자랑하는 것마저 당신 앞에 내려놓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