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자기 일이든 공동체의 일이든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 탓을 남에게 돌리는 것은 윤리적으로 비열한 짓일 뿐 아니라
자기 인생의 성공과 성장과 행복 면에서도 미성숙하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의 탓도 있겠지만 나의 탓도 있는 것이기에
나의 탓을 탓해야 다시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잘못을 고치고 성장하고 성숙해지게 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지나친 자책(自責)은 나쁘지만, 자책 자체는 좋은 것이겠지요.
비슷한 맥락에서 자신에게 화내는 것이 남에게 화내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화란 어떤 화도 나쁜 것이지만
남에게 화내는 것보다는 내게 화내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기를 괴롭히지도 말고
자기에게 화를 내지도 말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앞에서 얘기한
그런 인간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신앙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나 잘되었을 때나
하늘을 보는 것이 신앙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이 잘되었을 때는 자기 공이라고 하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남 탓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미성숙하고,
반대로 일이 잘되었을 때 다른 사람 덕분이라고 남을 추어주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자기 탓이라고 하는 것은 성숙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 그친다면 인간적으로 성숙한지 몰라도 신앙적으로는 부족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일이 잘되건 잘못되건 하늘을 볼 수 있어야 신앙적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잘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게 된 데는
아버지 야곱의 잘못도 큽니다.
곧 야곱의 편애가 형제들의 시기를 사게 한 것인데
형제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아버지 탓으로 돌리거나 변명하지 않고
자기들의 잘못이라고 하기에 성숙하고 진실한 회개의 모습이니 칭찬할 만한데,
요셉은 더 높은 신앙적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에게 화내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잘못해도 일이 잘되게 하실 수 있고 잘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든 잘되게 하려는 좋은 뜻을 가지고 계시고
구원의 계획을 가지고 인간의 잘잘못을 활용하십니다.
요셉이 팔려 간 것은 인간들이 한 짓이요 잘못된 것이지만
인간의 잘못을 구원 기회로 바꾸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모도 자식이 어떠하든 잘되기를 바라고,
우리도 자식이 어떠하든 잘되도록 돕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느님의 이런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하느님의 이런 사랑을 늘 보는 것은 우리가 자주 놓치는 것입니다.
인간의 악행을 구원 기회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줄 아는 관상의 눈을 요셉에게서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