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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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밀알이 죽어 성체가 되다
포도나무 가지를 잘라 땅에 심으면 그 가지가 자라 철이 되면 열매를 맺고,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다시 살아나모든 것을 품고 계신 하느님의 영에 의해 여러 갑절로 불어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인 성체가 되면, 그것은 하느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 됩니다. 그것에서 자양분을 얻는 우리 몸도 땅에 묻혀 썩은 뒤 정해진 때에 되살아납니다. 이 죽는 몸에게 죽지 않는 것을, 이 썩는몸에게 썩지 않는 것을 거저 주시는(1코린 15,53 참조)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의 육체에 부활의 은총을 내립니다‘ 우리가 마치 생명의 주인이라는 듯이 오만해지거나 감사를 모르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거슬러 자신을 드높이는 일 이 없도록, 하느님의 힘은 약함 안에서 완전해지기 때문입니다(참조: 1코린 15,43; 2코린 13,4),
-이레네우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둘째 오솔길】
버림과 그대로 둠
설교 19
버림의 열매는 지혜와 불타는 사랑이지 억압이 아니다
얘야, 일어나거라(루카 8,54).
본 설교에서, 엑카르트는 여자 아이를 죽음에서 소생시킨 하느님의 손을 가리켜 성령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엑카르트의 가르침과도 일맥 상통한다. 엑카르트는 우리를 우리의 근원으로 되돌리는 것은 성령이라고 가르친다.
“영혼이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하다면, 성령이 그 영혼을 자신의 근원으로 데려갈 것이다."
버리는 법을 익힌 사람은, 만물 위에 우뚝 선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성령은 자신이 흘러 나왔던 근원으로 그 사람의 영혼을 들어 올립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자신이 흘러 나왔던 영원한 상(lmage)으로 영혼을 데려갑니다. 아버지께서 만물을 지으신 것도 그 상을 본떠서였고. 만물이 하나가 되는 것도 그 상 안에서이며, 만물이 제 목적을 달성하는 것도 그 넓이와 깊이 속에서입니다.(397)


<금주간 성서 읽기> 마르 1-4장
<생태 영성 주간> 고요와 침묵과 절식을 통한 단순한 삶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와 목동 / 세 바르따스>
제 6장 오직 하느님만을
오직 홀로 살아가다
친절하고 현명한 주교는 이것저것을 잘 비교 숙고한 결과, 루치아 자신을 생각해 줘야 하겠고 그녀가 중심이 되어 있는 사건을 공펑하고 온화하게 조사하려면 그녀를 군중으로부터 멀리하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맹목적 신앙에까지 내달리려는 군중들에게서 그녀를 해방시키는 것이고 호기심에 찬 군중으로부터 받게 되는 피로를 면할 수 있게 되며 한 발 더 나가서 군중들의 아첨이나 조롱을 벗어나 자칫하면 쉽게 떨어질 수 있는 교만의 유혹에서 구해 내 주는 것이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면 발현자의 소망대로 그녀는 읽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교회에서 정식 조사를 하게 될 때 소녀를 일자무식꾼으로 혹은 그와 비슷한 말로 위원들 앞에 출두시킨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라 할 수 있을까?
그녀가 공부하는 동안 세간을 떠나게 하는 일은, 발현을 본 그녀의 감정과 순례자들의 그것과를 한꺼번에 시험하는 것이 되고, 파티마의 적과 종교의 적들이 귀찮게 진술하는 갖가지 비난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루치아가 없는데도 순례 행렬이 계속된다면 발현을 보았다고 말한 아이들을 소위 말하는 음모자의 꼭둑각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뒷전에서 책동하는 자의 이상야릇한 힘에 의해 교묘히 행동한 것이라고 말하지도 못할 것이다. 더구나 루치아가 언제까지나 군중을 끄는 개인적 면모나 경이적인 특질을 간직하고 있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루치아네 집은 이 제안에 두 말 할 것 없이 찬성하였다. 마리아 로사는 딸이 거짓말장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게 될 것이고 루치아 자신도 납득하고 체념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루치아로서는 더 말할 것 없이 진심으로 절원하는 바였다. 지금 그녀가 깊이 느끼고 있는 신적 고독은 고바 다 이리아에서의 열광적 군중의 아우성에 못지 않을 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따라서 주교의 생각은 그녀로서도 절실히 바라던 것이었다.(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