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강론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잡았습니다.
"영원의 문을 여는 주님 부활, 영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우리 부활"
그런데 저는 저의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것으로 강론을 시작해야겠습니다.
부끄러움이란 제가 아직도 육신 형제들의 영향을 더 받는 점,
그러니까 육신의 형제건 아니건 똑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점입니다.
죽음이 저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오게 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동안 지인들의 죽음과 수도원 선배들의 훌륭한 죽음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죽음들에게서 영적인 교훈은 많이 얻었지만,
저의 어머니 죽음에서처럼 죽음이 제게 가까이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이제 저의 육신 형제들이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 있습니다.
누나, 매형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고, 이번엔 제 형이 암수술을 받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니까 그런가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남의 일이 아니었지요.
마침 형의 수술 날이 그저께 성금요일이었습니다.
성금요일에 수술하였으니 주님 부활 대축일에 다시 살아나길 기대했고,
그런 마음으로 성금요일 저는 여느 해처럼 걷는 십자가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걸으며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부활이 고작 육신의 부활이야?!
고작 육신만 치유되는 부활이란 말이야?!
그래봤자 몇 년 더 살다가 죽는 거잖아?!
사실 암은 의사도 고칠 수 있는 겁니다.
요즘은 로봇이 더 잘 수술할 수도 있다지요.
그래봤자 몇 년 더 사는 것이고, 영원히 사는 부활은 아닙니다.
이런 묵상을 하고서 어제 로마서를 읽으니 다음 구절이 저절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부활 대축일에 우리가 바라고 기도해야 할 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 그 자체가 아니고,
하느님 없이도 기사회생하는 부활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이 부활 대축일에 가장 바라고 기도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내 안에서 부활하시는 것이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가 오늘 로마서가 얘기하듯 바로 이것이지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냐고 묻는데 저는 또 한 번 부끄러움 느꼈습니다.
솔직히 제가 그 사실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세례란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느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정도로 알았지
주님과 그리고 주님의 죽음과 하나 되는 아주 밀접하고 인격적인 세례는 아녔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죽고 이렇게 부활해야 주님과 함께 영원히 부활하게 되겠지요.
사실 하느님의 창조와 주님의 강생과 우리의 세례와 부활이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서 살다가 끝나라고 창조하지 않으셨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죽으라고
오시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고, 죽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한 것은 석가모니의 가르침만으로도 충분하고,
그것만을 위해 주님이 수고스럽게 여기까지 내려오실 필요가 없지요.
주님께서 오시고, 가르치시고, 죽으신 것은, 이 세상에서는 물론 저세상까지,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영원히 우리가 행복하게 살라심이며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으니” “저 위의 것을 추구하라.”고 얘기합니다.
주님의 오심은 하늘과 영원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은 이 세상에서 하늘과 영원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영원을 알려주시기 위해 오셨고 하늘의 문을 열어주셨는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을 갈망하고 저 위의 것을 추구합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내 옆에는 지금 누가 있습니까?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께 부활 축하 인사를 드립니다.
지금 한창 푸르러지는 나무들보다 더 활기차시고,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들보다 더 아름다운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