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577 추천 수 3 댓글 1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오늘 토빗기는 토빗의 아들 토비야가 불행하고 억울한 여인 사라를

아내로 맞이함으로써 한 여인을 불행으로부터 구제해주는 얘기인데

첫날밤을 맞이하여 토비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이 누이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란 무슨 뜻일까요?

 

한 때 중광스님이라는 분이 있어서 그분과 얽힌 많은 얘기가 회자되었지요.

그중 하나가 한 여자를 불행으로부터 구제해주는 얘기이고,

말하자면 중광스님이 한 여인에게 육보시를 해주는 얘기입니다.

 

한 번도 남자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꼽추 여인,

한 번도 남자 품에 안겨본 적이 없어 불행하다는 여인에게

하룻밤의 사랑을 안겨준 얘기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이만한 사랑도 드물 겁니다.

이런 사랑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욕망을 초월한 겁니다.

그리고 자기의 호불호와 상대방의 미추도 초월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중광스님의 육보시가

순수함과 진실함 면에서는 오늘 토비야의 그 진실함과 같다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다른 면도 있습니다.

 

역시 신앙의 차원이지요.

토비야의 사랑은 성사적입니다.

 

토비야는 사라와 잠자리에 드는 그 순간에 기도를 드립니다.

눕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 하늘을 같이 향하는 겁니다.

욕망뿐일 수도 있는 그 순간에 기도를 드리는 것이고,

욕망으로 한 여인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성사적으로 대하는 겁니다.

 

인간은 사랑을 하도록 태어난 존재이기에 다 사랑을 하지만

참으로 여러 차원에서 사랑을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순전히 성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사랑,

소유욕에서 비롯된 폭력적인 사랑,

좋은 감정에서 사랑으로 발전한 사랑,

친구들 간의 편하고 순수한 사랑,

같은 지향을 가진 동지적인 사랑,

민족적인 사랑과 민족을 초월한 사랑,

이렇게 인간의 사랑만 봐도 여러 차원이 있는데

성사적인 사랑은 그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사랑입니다.

 

우선 그 사랑의 시작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됩니다.

내 사랑하는 그 사람을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고

그 사람을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남녀 간의 사랑 뿐 아니라

무릇 모든 성사적인 사랑은 다 이런 것입니다.

저희 수도원에서도 같이 사는 형제는 프란치스코의 유언대로

주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형제들입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형제들은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사는 것이 아니고

한 인간일 뿐인 관구장의 인사명령 때문에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사적인 사랑은 다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겁니다.

하늘의 이슬이 풀잎에 살포시 내려앉듯

하느님의 사랑이 내게 내려와 지니게 된 사랑으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내가 택한 사람을 사랑하고,

내가 택한 사람만 사랑하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맡기신 사람을

나의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로,

욕망이 아니라 성사적으로 사랑하기로 다짐해야겠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2Jul

    연중 14주 수요일-파견의 단계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오늘 복음은 열두 사도를 부르시고 파견하시는 얘깁니다. 어제 복음에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일꾼을 보내달...
    Date2017.07.1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380
    Read More
  2. No Image 11Jul

    연중 14주 화요일-행복할 때까지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오늘 창세기는 야곱의 이름이 어떻게 이스라엘이 되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조상이 되었는지를 얘기해줍니다.   그런데 어...
    Date2017.07.1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528
    Read More
  3. No Image 10Jul

    연중 14주 월요일-꿈 잘 꾸는 사람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회당장은 어쩌자고 예수님께 이런 청을 하는 것입니까? 딸이 죽었으면 이제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그걸 생각해야지 어찌 주님께 와서 손을 얹어 달라고 하고 살려 ...
    Date2017.07.1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626
    Read More
  4. No Image 09Jul

    연중 제 14 주일-쓴맛이 단맛이 되는 얘기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말씀 자체로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하고 ...
    Date2017.07.0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391
    Read More
  5. No Image 08Jul

    연중 13주 토요일-영적인 악착같음. 그거 내게 있는가?

    “아버지, 제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저를 축복해주십시오.”   오늘 창세기는 야곱이 이제 전면에 등장하는 얘기입니다. 이 야곱에게서 열두 아들이 태어나고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생겨났으니 아브라함이 이민족(하갈과 이스마엘의 자식들)까지 포함...
    Date2017.07.0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533
    Read More
  6. No Image 07Jul

    연중 13주 금요일-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는 신앙인

    오늘 주님께서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잘못 말씀하신 거라고 생각할 수 있고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가 아니라 <의인은 물론 죄인도>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Date2017.07.0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3 Views1565
    Read More
  7. No Image 06Jul

    연중 13주 목요일-알다가도 모를 하느님의 잔인한 신비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오늘 창세기의 얘기는 그야말로 <알다가도 모를> 얘깁니다. 우리말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알다가도 모른다 하니 말입니다.   그...
    Date2017.07.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394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32 733 734 735 736 737 738 739 740 741 ... 1301 Next ›
/ 130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