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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영리함과 영악함은 어떻게 다른가?

영리함은 사랑에 반하는가?

 

오늘 복음 묵상은 이런 질문으로부터 펼쳐집니다.

 

영리함과 영악함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이러합니다.

영악함: 지나칠 만큼 영리하고 똑똑함

영리함: 똑똑하고 민첩함

 

그러니까 영악함이 영리함보다 더 부정적인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비유의 집사는

영리한 것이 아니라 영악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불의한데다 주인의 재산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모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주님은 이런 집사를 영리하다고 칭찬을 합니다.

 

그의 불의가 칭찬받을 리는 없을 텐데,

그의 무엇이 칭찬받을만한 영리함일까요?

주님께서 이 집사를 칭찬하신 것은 우리도 본받으라는 건데

그의 무엇을 우리는 본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의 사랑을 본받으라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재물을 자기 욕망을 위해 탕진하는 것은 불의하지만

하느님의 재물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은 불의가 아니라 사랑이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재물을 사랑을 위해서 쓰기 원하시니

당신 재물을 이웃에게 쓰는 것은 불의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말씀일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재물과 슬기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도출할 수 있습니다.

재물을 탐욕을 위해서 쓰면 바보다.

재물을 사랑을 위해서 쓰면 슬기롭다.

 

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느님의 재물이 나의 탐욕을 위한 것일 때는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재물이 이웃 사랑을 위한 것일 때는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써도 좋을 정도로 내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을 위해서 뭣을 할 때는

집사인 우리에게 당신 것을 다 주시고 완전히 맡기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웃을 위해 뭣을 쓰는 것을 조심치 말고

뭣을 나를 위해서 쓰는 것은 아닌지 그것만 잘 살피면 될 것 같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하느님의 것을 이웃을 위해 마구 써라!

이것이 오늘 주님의 가르치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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