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빵의 기적 얘기는 4복음에 모두 나오는데
오늘 우리가 들은 마태오복음만은 이 이야기를
세례자 요한의 죽음 뒤에 배치하여 어떤 연관성을 갖게 합니다.
곧 다른 복음에서는 다른 이유들 때문에 조용한 곳으로 물러가시는데
마태오복음에서만은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 얘기를 들으시고
따로 조용한 곳으로 물러가십니다.
그런데 마태오복음이 다른 복음과 또 다른 점은
다른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가신 것에 비해
마태오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따로 조용한 곳에 가신 것처럼,
다시 말해서 제자들마저 떼어놓고 혼자 조용한 곳에 가신 것처럼 나옵니다.
아무튼 마태오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충격을 받으시고
혼자 있고 싶으셨는데 아마 혼자서 마음을 추스르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군중들로부터는 떨어져 있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럴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로 충격을 받고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을 써줄 여력이 없을뿐더러
다른 이의 위로마저 필요 없거나 오히려 부담스럽고
그래서 오로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실 수도 없으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당신 가실 곳에 와 있기 때문인데
저 같으면 그런 그들이 진드기처럼 달라붙는다고 생각할 텐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까지 당신을 찾는 그들을 가여워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면서 저를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아니 저에게는 두 가지 차원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나를 추스르기 위한 나만의 시간과
너를 위해 나를 내어주는 시간의 구분이 그것이고
나를 추슬러 먼저 나의 힘을 회복해야 할 때와
그런 다음에야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게 되는 때의 구분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는 그런 구분을 하실 수가 없고
그래서 당신의 온 힘을 다 쏟아 당신을 찾는 이들을 돌보십니다.
제가 보기에 저는 여력으로 다른 사람을 선심 쓰듯이 돕는데
주님께서는 사력을 다해 다른 사람을 섬기시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제게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인데
주님께는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당신이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력과 사력,
도움과 섬김.
이것이 저와 주님과의 차이임을 절감하는 오늘입니다.
문득 떠오릅니다.
나눔은 잉여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없어서는 안되는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용기...아마도 이런 마음 가짐일꺼라는 여기까지 이고....
그 한 발을 내어 눟지 못하는 제 자신의 한계를 보는 아픔이 있습니다. 이런 제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