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1,1-4
먼저 눈여겨볼 것은 ‘순서’입니다.
제자들이 기도를 청하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았기에 제자들은 청한 것입니다.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어제 마리아가 그분 발치에 앉았듯,
기도는 ‘그분을 바라보는 데서’ 배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방법(기술)’이 아니라
기도의 ‘내용’을, 그것도 아주 짧게 알려 주십니다.
첫마디는 “아버지”입니다.
이 한마디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말에는 이미 ‘자녀’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부르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압니다 ―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똑같은 이름으로 하느님을 부름으로써,
우리는 그분과 하나가 됩니다.
성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가 삼위일체의 사랑을 노래했듯,
기도는 무엇보다 ‘사랑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청원도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그분의 일),
일용할 양식과 용서와 유혹으로부터의 보호(우리의 삶).
교회는 이 기도를 ‘복음 전체의 요약이며 가장 완전한 기도’라 부릅니다.
‘무엇을 청할지’만이 아니라 ‘어떤 순서로 청할지’,
나아가 우리 마음까지 빚어 주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기도에서 오늘 기념일이 태어납니다.
‘묵주 기도’는 ‘주님의 기도’로 각 신비를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성모송을 알알이 되풀이하며,
성모님의 눈으로 그리스도의 신비 ―
환희·빛·고통·영광― 를 하나씩 되새깁니다.
그러니 묵주 기도는 성모님께 갇힌 기도가 아니라,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을 바라보는 기도입니다.
영적 열매 성월의 눈으로 보면
묵주 기도는 ‘성실·온유·절제’를 익히는 조용한 학교입니다.
화려한 말 대신 단순한 몇 마디를 ‘날마다 꾸준히’ 되풀이하는 성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에 이끌리는 온유,
말을 줄이고 한 가지에 머무는 절제 ―
이 되풀이 속에서 마음이 고요해지고, 열매가 천천히 익습니다.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히지 않고, ‘날마다’ 익어 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고
청하라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녀로 살고 있는가?
나는 ‘우리 아버지’라 부르며 모든 이를 형제자매로 여기는가?
나는 ‘용서하오니 용서하소서’를 감히 진심으로 바칠 수 있는가?
나는 단순한 기도를 ‘날마다’ 꾸준히 되풀이하는 성실을 지녔는가?
주님,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로 살게 하소서.
단순한 기도를 날마다 꾸준히 바치게 하시고,
성모님과 함께 당신의 신비를 되새기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