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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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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묵상 2026.9.11

 

네 눈에서 먼저 들보를 빼내어라.”(마태 7,5)는 말씀을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그리고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와 함께 읽으면, 복음이 말하는 관계의 실제가 아주 선명해집니다.

 

들보를 본다는 것은 관계의 출발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가 어려워지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티를 먼저 봅니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할까?”,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저 사람이 조금만 달라지면 관계가 좋아질 텐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시선을 돌리십니다. “그의 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기 전에 네 눈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아라.” 내 눈의 들보는 단순히 큰 잘못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상대방을 바라보는 고정관념, 상처, 자존심, 비교, 기대, 인정받고 싶은 욕구, 옳아야 한다는 집착, 상대를 내 방식대로 변화시키려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특히 관계에서 가장 발견하기 어려운 들보는 나는 옳다는 확신입니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상대방의 말은 잘 들리지 않습니다. 대화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듣는 것이 아니라 반박할 말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들보를 발견한다는 것은 모든 잘못이 내 탓이다라고 자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훨씬 복음적인 자기 인식입니다. “저 사람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저 사람을 바라보는 내 눈에도 무엇인가 끼어 있을 수 있다.” 이 작은 인정에서 관계의 회개가 시작됩니다.

 

들보를 빼면 상대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들보를 뺀다고 상대방의 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때에야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내어 주려고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똑똑히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분노를 통하여 보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하고, 내 기대를 통하여 보던 사람을 그의 처지에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전에는 고집으로만 보였던 것이 상처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몸짓일 수도 있고, “무례함으로만 보였던 것이 인정받고 싶은 절박함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자비는 잘못을 보지 않는 눈이 아닙니다. 자비는 잘못만 보지 않는 눈입니다.

 

관계의 실제에서는 이렇게 드러납니다. 공동체에서 어떤 형제가 나에게 거친 말을 했다고 생각해 봅니다. 첫 반응은 쉽게 이렇게 됩니다. “저 형제는 왜 항상 저런 식이지?” 그러나 들보를 바라보는 사람은 한 번 더 자신에게 묻습니다. “그의 말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지만, 왜 나는 이 말에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가?”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뜻밖의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 오래전부터 그 사람에게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관계의 언어가 달라집니다. “당신은 항상 왜 그래요?”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당신이 틀렸습니다.”에서 제가 보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먼저 바뀌십시오.”에서 이 관계를 위해 내가 먼저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로 옮겨갑니다. 바로 여기에 황금률이 들어옵니다.

 

내가 이해받기를 바란다면 먼저 이해하려 하고, 내가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먼저 존중하며, 내가 실수했을 때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면 먼저 기다려 주고, 내가 용서받기를 바란다면 먼저 용서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가면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에 이릅니다.

 

결국 세 말씀은 하나의 흐름입니다. 들보를 보는 것은 자기 인식이고, 먼저 해 주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며,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관계의 완성입니다. 프란치스칸적으로 말한다면, 들보를 발견하는 순간은 내가 작아지는 순간입니다. 상대방보다 내가 더 낫다는 자리에서 내려오고, 내가 상대를 판단하는 심판자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낮아진 자리에서 비로소 형제를 만납니다. 그때 형제는 더 이상 내가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와 마찬가지로 자비가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관계의 실제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이것일 것입니다. “저 사람에게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가 아니라 지금 나는 어떤 눈으로 저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저 사람에게서 티를 빼내려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사람과 함께 아버지의 자비가 필요한 가난한 사람인가?” 내 눈의 들보를 깨닫는 순간, 관계의 중심은 판단에서 자비로, 통제에서 허용으로, 옳음에서 사랑으로 이동합니다. 그것이 복음이 말하는 회개이며, 동시에 우리가 매일 공동체와 일상의 관계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가장 현실적인 형제성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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