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오늘 바오로 사도는 말하는데
나는 그 은총을 넘치게 받을 수 있는 자이고,
받은 그 은총을 넘치게 나눌 수 있는 자인가?
이것이 오늘 라우렌시오 성인 축일을 지내면 저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도전입니다.
왜냐면 라우렌시오 성인이야말로 이런 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분이고,
그래서 교회는 사도도 아닌 그를 기념일이 아니라 축일로 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두 부제 순교자를 사도가 아닌데도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스테파노 부제가 먼저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순교자로서 축일로 지내고,
라우렌시오 부제는 로마 교회의 순교자로서 축일로 지내는 것인데 이는 그가
단지 부제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삶과 순교가 특히 기릴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순교는 로마의 수많은 순교자 가운데서도 영웅적이어서 실제로 그렇게
순교했을까 의심될 정도인데 고등어를 석쇠 구이 하듯 그렇게 순교했다지요.
그리고 그렇게 끔찍한 순교를 당하면서도 그렇게 의연하였다지요.
그래서 오늘 복음 말씀의 ‘썩어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로 순교를 완성했지요.
그러나 이것보다 더욱 기릴만한 것은 그의 부제 직무 수행입니다.
부제로서 교회 재산을 관리할 때 바오로가 오늘 독서에서 얘기한 그대로였습니다.
황제가 교회의 보물을 몰수하려고 하자 그는 그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는
황제에게 갈 땐 이들을 데리고 가서 이들이 바로 교회의 보물들이라고 했다지요.
그런데 그가 그렇게 할 수 있게 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은총을 넘치게 받았기 때문이고,
은총이 넘쳐서 그리한 것입니다.
은총이 넘치면 누구나 라우렌시오 성인처럼 나눌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넘치도록 받는 것입니다.
잔이 넘치도록 받아야지 넘쳐서 흘러가지
찰랑찰랑 채울 정도만 받으면 넘쳐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도 종종 넘치게 받지 않습니다.
자기 잔을 채우고 나면 됐다고 하며 더 받지 않습니다.
자기 배부르면 그것으로 자기만 만족하고 나눌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가진 것이 없으면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이 가졌어도 나눌 생각 곧 사랑이 없으면 나눌 수 없습니다.
많이 가졌어도 내 것이라고 움켜쥐는 사람은 나누는 것이 아깝잖아요?
그러므로 가진 것이 많아도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 거저 받은 것이고,
넘치게 받고 과분하게 받았다고 생각할 때에야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 은총으로 자기만 만족하고 마는 사람과
하느님 은총을 나누는 사랑의 사람이 있는데
나는 어떤 사람인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