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2,24-26
주님께서는 작은 ‘밀알 하나’를 들어 보이십니다.
밀알은 땅에 떨어져 ‘죽어야’ 싹이 트고,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자기 한 알을 움켜쥐고 있으면
그저 ‘한 알 그대로’ 남을 뿐입니다.
생명의 신비는 ‘내어 줌’에 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이 밀알에서 두 가지를 함께 봅니다.
먼저 그리스도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십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서 땅에 떨어져 죽으심으로
온 인류라는 풍성한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또한 순교자들도 ‘밀알’입니다.
그들이 흘린 피는
도리어 더 많은 신앙의 열매를 길러 냈습니다.
오리게네스 자신도 순교를 갈망했고,
그의 아버지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오늘 기리는 성 라우렌시오가
바로 그 ‘밀알’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교회의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정작 ‘교회의 보물’을 내놓으라는 명령 앞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교회의 보물입니다” 하고 답했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사랑하여 움켜쥐지’ 않고,
기꺼이 땅에 떨어지는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알의 죽음은
수많은 회개와 믿음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친절·선행의 관점에서 보면
라우렌시오의 선행은 두 겹입니다.
하나는 가난한 이를 ‘보물’로 알아본 눈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목숨까지 내어 준 사랑입니다.
참된 선행의 끝은
결국 ‘자기를 내어 주는’ 데까지 이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끝이 아니라
‘많은 열매’의 시작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한 알 그대로’ 나를 움켜쥐고 있지 않은가?
나는 가난한 이를 ‘교회의 보물’로 알아보는가?
나의 선행은 ‘자기 내어 줌’에까지 이르는가?
나는 ‘죽어야 열매 맺는’ 밀알의 신비를 믿는가?
주님,
저를 움켜쥔 한 알이 아니라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이 되게 하소서.
가난한 이를 보물로 알아보게 하시고,
자기를 내어 주는 선행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