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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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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치운쿨라 4 다시 형제성으로

 

포르치운쿨라에서 태어난 것은 수도회라는 조직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태어난 것은 형제성이라는 새로운 인간관계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부하나 제자나 구성원이라 부르지 않고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형제라는 이름 안에서는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누구도 지배할 수 없으며, 누구도 다른 이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형제는 나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며, 내가 선택한 사람이기 전에 하느님께서 내 곁에 보내신 신비입니다.

 

형제성은 서로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의 편안한 모임이 아닙니다. 형제성은 다름을 견디는 사랑이고, 타인의 약함을 품는 인내이며, 나의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공동선을 찾는 가난입니다. 형제성은 서로 완전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서로 불완전함에도 떠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형제의 실수 앞에서 정죄하기보다 회복을 기다리고, 형제의 성공 앞에서 시기하기보다 함께 기뻐하며, 형제의 상처 앞에서 충고보다 먼저 침묵으로 곁을 지키는 것이 형제성입니다.

 

우리는 종종 형제성을 말하면서도 마음속에는 나의 왕국을 세웁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야 편안하고, 내 방식대로 일이 이루어져야 안심하며, 내가 인정받지 못하면 공동체 전체가 잘못된 것처럼 느낍니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나의 기대에 맞을 때만 받아들이고, 공동체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때로는 나의 뜻을 관철하기 위하여 공동체를 이용합니다. 걱정이 지나치면 통제가 되고, 책임감이 지나치면 지배가 되며, 열정이 가난을 잃으면 자기 의지가 됩니다.

 

포르치운쿨라의 형제성은 우리에게 나의 왕국을 내려놓으라고 초대합니다. 하느님 나라와 나의 왕국은 같은 마음 안에서 함께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곳에서는 포장과 증명과 자랑과 비교와 경쟁이 힘을 잃습니다. 내가 더 나아 보여야 한다는 불안도, 내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갈망도, 다른 이보다 앞서야 한다는 조급함도 조금씩 사라집니다. 그 자리에 다른 이가 빛나는 것을 기뻐하는 참되고 완전한 기쁨이 피어납니다.

 

포르치운쿨라의 작은 돌들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하나의 돌은 다른 돌보다 더 빛나려고 하지 않고, 가장 아래에 놓인 돌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으며, 가장 위에 놓인 돌은 혼자 지붕을 받치고 있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모든 돌은 서로의 무게를 나누어 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전체를 세웁니다. 어떤 돌 하나가 빠지면 벽 전체가 약해지듯, 공동체 안에서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말이 적은 형제도, 몸이 아픈 형제도, 일을 잘하지 못하는 형제도, 자신의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형제도 모두 공동체를 이루는 귀한 돌입니다.

 

형제성은 다른 이를 변화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먼저 변화되는 은총입니다. 형제의 허물을 보며 내 안의 들보를 발견하고, 형제의 느림을 견디며 나의 조급함을 내려놓고, 형제의 다름 앞에서 내 생각이 전부가 아님을 배우는 것이 형제성입니다. 형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을 통하여 나의 숨은 교만과 소유욕과 통제 욕구가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형제는 나의 성화를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진실하게 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다시 형제성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갈등이 사라진 공동체를 꿈꾸는 것이 아닙니다. 갈등 속에서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고받았을 때 침묵과 거리로 관계를 끝내지 않고 다시 대화의 문을 여는 것이며, 잘못한 이를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기보다 그가 다시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이 관계의 마지막 말이 되지 못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포르치운쿨라 대사의 정신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는 돌아오기에는 너무 늦은 사람이 없고, 용서받기에는 너무 큰 죄인이 없으며,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깊이 무너진 인생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의 공로를 계산하지 않고,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떠났는지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자비는 돌아오는 발걸음을 향하여 먼저 달려가고, 잃어버린 존엄을 다시 입혀 주며, 우리를 종이 아니라 자녀로, 이방인이 아니라 가족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포르치운쿨라 축일은 자비가 형제성을 다시 세우는 날입니다. 판단보다 이해를, 정죄보다 기다림을, 배제보다 포옹을 선택하는 날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상처받은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서운함을 내려놓으며, 내가 옳다는 사실보다 우리가 다시 형제가 되는 일을 더 귀하게 여기는 날입니다.

 

다시 형제성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형제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람입니다. 형제는 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할 성사입니다. 형제는 내가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복음을 배워야 할 동반자입니다. 형제의 약함은 내가 판단할 근거가 아니라 내가 사랑을 배워야 할 자리입니다. 형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느님께서 나에게 건네신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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