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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변모와 우리의 변화

 

예수님의 변모는 예수님께서 이전과 전혀 다른 분으로 바뀌신 사건이 아니라, 그분 안에 처음부터 감추어져 있던 하느님의 영광이 잠시 제자들의 눈앞에 드러난 사건입니다. 제자들이 늘 보아 오던 나자렛 사람 예수님, 먼지 나는 길을 걸으시고 배고픔과 피곤함을 느끼시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머무시던 그분 안에 하느님의 빛이 충만히 머물고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볼산에서 일어난 일은 예수님께 새로운 영광이 더해진 사건이라기보다, 제자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의 참모습을 보게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변화도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교적 변화란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거나, 지금의 나를 부정하여 낯선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내 안에 심어 놓으신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 죄와 두려움과 상처와 욕망에 가려져 있던 하느님의 모상을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더 많이 가져야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리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을 때 이미 우리 안에 주어진 빛을 드러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습니다. 그러나 그 빛은 세상의 성공이나 권력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성부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 아들의 순종에서 흘러나오는 빛이었고, 사랑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으려는 분의 내적 진실에서 나오는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십자가를 피하여 얻으신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시는 사랑 안에서 드러난 영광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변화도 고통이 사라지고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변화는 고통 가운데서도 사랑을 선택하고, 상처를 입고도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지 않으며, 억울함 속에서도 복수하지 않고, 실패 속에서도 하느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삶의 외적인 조건이 바뀌지 않아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이 달라질 때, 우리는 이미 변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베드로는 빛나는 순간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고통도 갈등도 없는 산 위에 머물고 싶었고, 초막을 지어 그 영광을 보존하려 했습니다. 우리 역시 은총의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합니다. 기도 중에 느낀 평화, 피정에서 받은 감동, 공동체 안에서 경험한 친교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초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우리의 변화는 좋은 체험을 많이 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감동은 순간이지만 말씀은 우리를 길 위에 세웁니다. 체험은 우리를 위로하지만 순종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산 위에서 예수님의 빛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산 아래에는 병든 아이가 기다리고 있었고, 고통받는 아버지가 있었으며, 믿지 못하고 다투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길 끝에는 예루살렘과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산 위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빛은 산 아래의 고통 속으로 내려갔으며, 마침내 십자가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변화가 일어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변화는 기도실 안에서 시작되지만 관계 안에서 확인됩니다. 우리는 기도 중에는 평화로울 수 있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는 형제 앞에서 비로소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 있지만, 무시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할 때 비로소 내 안의 참된 겸손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말할 수 있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품어 줄 때 사랑은 비로소 몸을 얻습니다.

 

변화는 거창한 사건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을 줄이고 한 번 더 들어 주는 것, 잘못을 변명하기보다 인정하는 것, 화가 날 때 즉시 반응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형제의 약점을 판단하기보다 그의 아픔을 헤아리는 것, 내가 옳다는 사실보다 관계를 살리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바로 이러한 작은 선택들 안에서 우리의 얼굴은 조금씩 그리스도의 얼굴로 변화됩니다.

 

참된 변화는 내가 다른 사람을 바꾸려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내가 배우자와 형제와 공동체와 세상을 내 뜻대로 변화시키려 할 때 관계는 통제와 갈등의 자리가 됩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내 마음의 완고함과 두려움과 자기중심성을 바라볼 때 변화의 문이 열립니다. 변화는 타인에게 요구하는 명령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은총에 내어 맡겨지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흔히 변화란 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복음적 변화는 오히려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자기주장을 더 강하게 펼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변화된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을 중심에 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빛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빛날 자리를 마련합니다. 자기가 인정받는 것보다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을 기뻐하고,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느님의 뜻이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변화는 자기완성이 아니라 자기 비움이며, 자기 확대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자기 내어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타볼산에서 빛나셨지만 그 빛을 자신을 과시하는 데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다시 평범한 모습으로 제자들과 함께 산을 내려가셨습니다. 이것이 참된 변화의 표지입니다. 참으로 변화된 사람은 자신의 영적 체험을 자랑하지 않고,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갑니다.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려 하지 않고, 조용히 상처 입은 이의 곁에 머뭅니다. 그의 변화는 화려한 말보다 따뜻한 태도에서 드러나며, 높은 이상보다 매일의 작은 섬김 속에서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우리의 변화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을 귀로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관계 속에서 받아들이고, 선택과 행동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은 마음속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용서와 기다림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 가운데 가장 작은 이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 소외된 형제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라는 말씀은 내 고집과 명예욕과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구체적인 결단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변화는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일 조금씩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는 긴 여정입니다. 때로는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며, 내 안에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빛나는 구름이 제자들을 덮었듯이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덮으시고, 우리가 다시 아들의 말씀을 듣도록 이끄십니다. 변화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업적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창조입니다.

 

마침내 우리의 변화는 얼굴의 변화입니다. 굳어 있던 얼굴이 부드러워지고, 판단하던 눈이 자비롭게 되며, 불평하던 입술이 감사와 축복을 말하게 됩니다. 타인을 경쟁자로 바라보던 눈이 형제로 바라보는 눈으로 바뀌고, 피조물을 소유와 이용의 대상으로 보던 시선이 하느님의 선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의 변모가 그분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건이라면, 우리의 변화는 우리 안에 심어진 그리스도의 생명이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그 변화는 산 위의 눈부신 순간보다 산 아래의 충실한 일상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누군가를 품어 주는 마음, 용서의 손길, 가난한 이를 향한 연민,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낮추는 선택 안에서 우리의 얼굴은 조금씩 주님의 얼굴을 닮아 갑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은 단지 예수님의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날이 아니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도록 초대받았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산 위에 초막을 짓고 머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빛을 가슴에 품은 채 고통받는 세상 속으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이 아니라 삶으로 알려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며, 사랑은 아직 살아 있고, 인간은 은총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가장 어두운 얼굴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빛은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우리의 상처가 자비로 변화되고, 우리의 두려움이 신뢰로 변화되며, 우리의 완고함이 온유함으로 변화되고, 우리의 고독이 형제성으로 변화되며, 우리의 일상이 사랑의 자리로 변화될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길은 언제나 같은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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