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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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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치운쿨라 1. 다시 처음으로

 

아씨시 평야 한가운데,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작은 돌 성당 하나가 있었습니다. 화려한 대성당도 아니었고, 세상을 놀라게 할 웅장한 건축물도 아니었습니다. 허물어진 벽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고, 낡은 지붕 아래로 햇살과 빗방울이 함께 머물던 이름 없는 작은 성당. 사람들은 그것을 '포르치운쿨라' '작은 몫'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세상이 가장 작다고 여기는 곳에서 가장 큰 일을 시작하십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그러하셨고, 갈릴래아의 작은 마을에서 그러하셨으며, 이제는 이 작은 돌담 사이에서 새로운 복음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곳에서 무너진 돌담만을 수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너져 있던 자신의 마음을 다시 세웠고, 욕망으로 갈라진 세상의 틈을 사랑으로 이어 붙였으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야, 내 집을 고쳐라."는 그리스도의 음성은 오래된 성당만을 향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향한 말씀이었고, 교회를 향한 말씀이었으며, 세상 전체를 향한 하느님의 끝없는 초대였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는 그 음성을 돌보다 먼저 자신의 심장에 새겨 넣었습니다.

 

포르치운쿨라는 돌보다 마음을 먼저 쌓는 곳이었습니다. 건물보다 관계를 먼저 세우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높은 자리가 사라지고, 작은 자리가 가장 큰 은총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남보다 앞서려 하지 않았고, 누구도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자기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는 다만 복음을 살아내려는 작은 형제가 되었고, 서로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성당은 수도회의 시작이라기보다, 형제성이 태어난 자궁이 되었고, 교회가 다시 복음을 배우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자유였고,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충만이었습니다. 두 손을 비워야만 하느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었고,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아야만 하느님의 꿈이 삶 안에서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포르치운쿨라는 바로 그런 내적 가난이 숨 쉬는 자리였습니다. 여기서는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능력이 아니라 사랑이었고, 성공이 아니라 순명이었으며, 소유가 아니라 내어줌이었습니다.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이 작은 성당은 육화의 신비를 조용히 품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잉태한 나자렛의 작은 집처럼, 포르치운쿨라는 복음을 세상 안에 다시 잉태하는 또 하나의 마리아가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곳에서 그리스도를 단지 묵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형제들 안에서, 가난한 이들 안에서, 나병 환자의 상처 안에서, 새와 꽃과 바람과 흙 속에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육화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되는 하느님의 방식임을 그는 이 작은 성당에서 배웠습니다.

 

포르치운쿨라에서 형제들은 함께 기도했고, 함께 일했고, 함께 울었으며, 함께 빵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의 공동체는 완전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품어 주었기에 아름다웠습니다. 누구도 혼자 성인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서로의 약함을 짊어지며 함께 하느님의 자비를 배워 갔습니다. 형제성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성령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포르치운쿨라는 용서의 집이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하느님께 청했던 '포르치운쿨라 대사(大赦)'는 단지 죄의 형벌을 덜어 달라는 청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이 작은 문을 통과하면 하느님의 자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복음의 선언이었습니다. 자비는 높은 담장을 세우는 힘이 아니라, 닫힌 문을 여는 사랑입니다. 죄인은 용서받기 때문에 다시 살아가고, 상처 입은 이는 사랑받기 때문에 다시 일어섭니다. 포르치운쿨라의 문은 지금도 세상을 향해 그렇게 열려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들어오너라.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너보다 먼저 와 있다."

 

포르치운쿨라 축일은 그래서 과거의 기념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처음을 다시 기억하는 날입니다. 처음 하느님을 사랑하던 마음으로 돌아가는 날이며, 처음 형제를 만났던 기쁨으로 돌아가는 날이고, 처음 복음을 들으며 가슴이 뛰던 자리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소유하지만, 처음의 마음은 자주 잃어버립니다. 지식은 늘어나지만 사랑은 줄어들고, 일은 많아지지만 기도는 메말라가며, 사람은 많아지지만 형제는 사라집니다. 포르치운쿨라는 그런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입니다. **다시 작아져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라. 다시 복음으로 살아라.**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거대한 성전보다 작은 마음 하나를 찾고 계십니다. 화려한 업적보다 사랑으로 비워진 사람 하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머무시는 집은 대리석으로 지은 궁전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는 한 사람의 가난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바로 오늘의 포르치운쿨라입니다.

 

그러므로 포르치운쿨라는 아씨시에만 있는 작은 성당이 아닙니다. 내가 용서를 선택하는 순간마다 포르치운쿨라는 다시 세워집니다. 내가 형제를 내 경쟁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는 순간마다 포르치운쿨라는 다시 살아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기보다 기쁘게 내어주는 순간마다 포르치운쿨라는 세상 한복판에 다시 태어납니다. 내가 "주님, 저는 당신의 작은 몫이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바로 그 순간, 하느님께서는 내 안에 또 하나의 포르치운쿨라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의 삶이 저물어 마지막 숨을 내쉬는 날, 하느님께서는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큰 성당을 세웠느냐고,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었느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느냐고. 다만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의 마음은 마지막까지 포르치운쿨라였느냐. 작은 사랑 하나를 끝까지 지켜 낼 만큼 가난하고, 겸손하고, 자비로운 집이 되었느냐." 그 질문 앞에서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의 작은 성당이 되어,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살아낸 또 하나의 포르치운쿨라로 봉헌되기를,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가 걸었던 그 작은 길이 오늘 우리의 발걸음 안에서도 다시 시작되기를, 포르치운쿨라의 종소리는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영원히 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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