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요한 4,16)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한마디는 하느님께서 사랑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을 넘어, 사랑 자체가 하느님의 존재 방식임을 드러내는 영원한 선언입니다. 성부께서는 성자에게 자신을 남김없이 내어주시고, 성자께서는 성부께 자신을 온전히 돌려드리시며, 성령께서는 그 사랑을 끝없이 흘려보내시는 생명의 숨결이 되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은 서로를 향한 끝없는 내어줌이며, 그 내어줌 안에서 우주는 태어났고, 생명은 지금도 새롭게 창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단순히 따뜻한 감정을 간직하거나 선한 행동을 몇 가지 실천하는 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를 삶의 중심에 두던 방식에서 벗어나, 관계 안에서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하는 순간에도, 기다려 주는 순간에도, 이해받기보다 먼저 이해하려 애쓰는 순간에도, 내 시간과 마음과 생명을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내어주는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때 사랑은 더 이상 나의 능력이 아니라 내 안에 머무르시는 하느님의 생명이 되어 나를 통하여 흘러갑니다.
사도 요한은 이어서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1) 이 말씀은 의무를 부과하는 명령이 아니라 은총을 이어 가는 초대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사랑받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며,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 안에 심어 놓으신 생명의 씨앗이 자라나는 열매입니다.
프란치스칸의 영성은 바로 이 사랑을 형제성이라고 부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모든 이를 형제와 자매라고 불렀던 이유는 모든 존재가 같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태양과 달과 물과 불과 흙까지도 형제자매로 노래한 까닭은 모든 피조물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제를 사랑하는 일은 나의 선행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을 지나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허락하는 일입니다.
도구적 존재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의 흐름을 막지 않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였듯이, 성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삶을 평화의 도구로 내어드렸듯이, 우리 역시 사랑의 통로가 될 때 비로소 하느님은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 또한 하느님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낼 때 더욱 충만해지는 생명의 강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앙의 참된 깊이는 하느님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오늘 나를 통하여 얼마나 흘러가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았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 비교와 경쟁은 형제애로 바뀌고, 두려움은 신뢰로 바뀌며, 소유는 나눔으로 바뀌고, 나의 왕국은 하느님의 나라에 자리를 내어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더 이상 복음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복음을 살아내는 육화된 말씀이 됩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이미 하느님의 나라 안에 머무는 사람입니다. 그의 존재는 침묵으로도 사랑을 전하고, 그의 눈빛은 용서를 말하며, 그의 기다림은 희망을 낳고, 그의 삶은 관계마다 그리스도를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서 머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다른 이에게 흘러가고, 또 다른 사랑을 낳으며, 마침내 모든 피조물을 하나의 형제성 안으로 끌어안는 영원한 생명의 순환이 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안에 머무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방식이며, 복음이 오늘도 육화되는 가장 구체적인 기적이라는 사실을 존재론적으로 알아듣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