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영적 여정 11 오름에서 내어줌으로
프란치스칸 기도가 완성하는 수도승 전통
수도승들의 영적 여정은 인간이 하느님을 향하여 한 걸음씩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결코 잘못된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마음을 정화하며,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잃지 않도록 이끌어 준 교회의 소중한 유산이었습니다. 광야의 침묵과 수도원의 기도는 수많은 성인들을 길러 냈고, 교회는 그들의 눈물과 기도 위에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역사는 언제나 더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올라가려는 갈망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시는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프란치스코는 다시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영적 여정의 방향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출발점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인간의 갈망보다 앞서는 것은 하느님의 갈망이며, 인간의 사랑보다 먼저인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복음의 진실을 삶으로 증언하였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 기도의 중심에는 언제나 육화가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건은 단순히 신앙의 한 교리가 아니라, 모든 영성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삶 안으로 들어오셨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은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름에서 내어줌으로의 전환입니다. 수도승 전통이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여 하느님께 올라가는 길을 강조하였다면, 프란치스칸 영성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길을 강조합니다. 하나는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순례를 보여 주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순례를 보여 줍니다. 이 두 길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완성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수록 더욱 자신을 내어줄 수 있고, 자신을 내어줄수록 더욱 깊이 하느님 안에 머물게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끊임없는 자기 비움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는 것을 덕행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광을 붙잡지 않으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셨듯이, 프란치스코도 자신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었습니다. 그는 가난을 선택하였고, 형제들을 선택하였으며, 가장 작은 이들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그것은 희생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이 내어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도는 언제나 자신을 선물로 바치게 합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 하지 않고 더 많이 나누려 합니다. 더 높아지려 하지 않고 더 낮아지려 합니다. 더 인정받으려 하지 않고 더 사랑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은 서로를 붙잡는 생명이 아니라 서로를 끝없이 내어주는 생명입니다. 성부는 자신을 온전히 성자에게 내어주시고, 성자는 자신을 온전히 성부께 돌려드리며, 성령은 그 사랑의 흐름 자체이십니다. 프란치스칸 기도는 바로 이 삼위일체의 사랑 안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성숙은 얼마나 높은 신비를 체험했는가로 판단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사랑하게 되었는가, 얼마나 오래 기다려 줄 수 있는가, 얼마나 기쁘게 용서할 수 있는가, 얼마나 자유롭게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가가 기도의 깊이를 말해 줍니다. 하느님께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더욱 따뜻해지고, 더욱 온유해지며, 더욱 단순해집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의 성덕이었고, 클라라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결국 기도의 마지막 계단은 더 이상 오르는 계단이 아닙니다. 마지막 계단은 자신을 내어주는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비로소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분이기 이전에, 인간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신 분이셨습니다. 그 길을 따르는 사람도 높은 곳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낮은 곳을 향해 자신을 내어줍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의 영광은 가장 찬란하게 빛납니다.
프란치스코는 산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이 진실을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는 하늘을 향한 사다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내려온 다리였습니다. 그는 그 다리 위를 걸으며 하느님께 다가갔고, 동시에 형제들에게 다가갔으며, 피조물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언제나 관계를 낳았고, 관계는 사랑을 낳았으며, 사랑은 다시 그리스도를 세상 안에 살아 계시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칸 기도가 수도승 전통을 완성하는 이유입니다. 기도는 더 이상 나 혼자 하느님께 오르는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하여 세상으로 흘러가시는 길이 됩니다. 오름은 내어줌으로 완성되고, 관상은 사랑으로 완성되며, 침묵은 형제애로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은 결국 하나의 복음으로 모아집니다. 사랑은 언제나 자신을 내어주는 쪽으로 흐릅니다. 기도는 바로 그 사랑의 흐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그 흐름을 막지 않고 세상 끝까지 흘려보내는 삶입니다. 그 삶이 프란치스코가 걸었던 길이며, 오늘 우리 모두가 다시 걸어야 할 복음의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