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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영적 여정 5. 기도는 관계를 낳고, 관계는 그리스도를 낳는다

 

사랑은 언제나 관계 안에서 육화된다.

기도가 깊어진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가 깊어진다는 것은 관계가 깊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조금씩 변화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치유될수록 하느님과의 친밀함도 더욱 깊어집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하나의 길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진실을 자신의 삶으로 증언하였습니다. 그는 산 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하느님을 만난 뒤, 다시 산속으로 숨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로 걸어갔습니다. 이전에는 혐오하던 나환자에게 다가갔고, 거리의 거지들을 형제로 맞이하였으며,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세상을 떠나는 기도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기도였습니다.

 

참된 기도는 사람을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사람에게 더 가까이 데려갑니다. 하느님께 가까워질수록 사람에게서 멀어진다면, 우리는 아직 하느님의 마음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사람을 향하여 몸을 굽히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과의 일치는 형제들과의 일치 안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는 공동체를 하나의 조직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공동체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 그리스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료들을 '형제들'이라 불렀습니다. 그 호칭은 단순한 애칭이 아니라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아버지를 모신 사람들이며, 같은 성령의 숨결을 나누는 사람들이고, 같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사람들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기도는 이 형제성을 태어나게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기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칸 영성은 조금 다르게 말합니다. 기도는 관계를 잘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눈을 열어 줍니다. 그 눈이 열릴 때 우리는 상대를 더 이상 이용하거나 판단하거나 비교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신비로운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그 관계 안에서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끝까지 기다려 주는 순간, 그 관계 안에서는 이미 십자가의 사랑이 살아 움직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순간, 그 관계 안에서는 이미 부활이 시작됩니다. 기도는 바로 이러한 관계의 신비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의 호흡입니다. 프란치스코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피조물을 사랑하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에게 태양은 '형제 태양'이었고, 달은 '자매 달'이었으며, 바람과 물과 불과 흙도 모두 같은 창조주의 사랑 안에서 태어난 가족이었습니다. 이것은 자연을 낭만적으로 바라본 시인의 감상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신앙의 통찰이었습니다.

 

관계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 방식입니다. 성부는 자신을 온전히 성자에게 내어주시고, 성자는 자신을 온전히 성부께 돌려드리며, 성령은 그 내어줌의 사랑 자체이십니다. 삼위일체 안에는 소유도 지배도 경쟁도 없습니다. 오직 서로를 존재하게 하는 사랑의 흐름만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칸 기도는 바로 이 사랑의 흐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를 위한 은총을 얻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사랑의 흐름 속에 맡기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무엇을 받아 내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하여 사랑하실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결국 도구가 되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 남긴 한마디는 프란치스칸 기도의 핵심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한마디 안에서 육화는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온 것은 마리아가 자신의 삶을 내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보다 하느님의 뜻을 먼저 받아들였고, 자신의 미래보다 하느님의 생명을 먼저 품었습니다. 그녀의 순명은 소극적인 복종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자유로운 응답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기 안에 모시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삶으로 그리스도를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클라라가 말하는 '닮아감'이며,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거룩한 활동으로 그리스도를 낳는 삶'입니다. 기도는 결국 우리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게 합니다. 우리의 말과 손길과 선택과 관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태어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열매는 황홀한 체험이 아닙니다. 기도의 열매는 변화된 관계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게 되는 마음입니다. 더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인내입니다. 더 깊이 용서하는 자비입니다. 더 기쁘게 자신을 내어주는 자유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께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만나시는 살아 있는 성전으로 우리를 빚어 갑니다. 그때 우리의 일상은 성사가 됩니다. 식탁은 제단이 되고, 노동은 봉헌이 되며, 형제와 자매를 향한 작은 친절 하나는 복음의 선포가 됩니다. 평범한 하루는 육화가 계속되는 시간이 되고,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서 오늘도 세상을 사랑하시는 방식이 됩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평생 살아낸 기도의 길입니다. 기도는 관계를 낳고, 관계는 사랑을 낳으며, 사랑은 마침내 그리스도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는 곳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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