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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영적 여정 4. 육화, 기도의 방향을 바꾸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오셨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다른 종교들과 구별되는 하나의 놀라운 사건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께 다가간 이야기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신 이야기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도전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며,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기 내어주심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이 한 구절은 그리스도교 영성 전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열쇠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시간을 입으셨고, 무한하신 분께서 유한한 인간의 삶을 선택하셨으며, 영광의 주님께서 가장 연약한 피조물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이것이 육화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육화의 신비 앞에서 평생 머물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전능함보다 하느님의 겸손에 더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께서 한 아기의 울음으로 세상에 들어오셨다는 사실, 만물을 붙드시는 분께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셨다는 사실, 생명의 주인이신 분께서 배고픔과 피곤함을 겪으셨다는 사실이 그의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에게 하느님은 무엇보다 겸손하신 하느님이었습니다. 그는 권고에서 말합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동정녀의 태중에 내려오셨을 때처럼 날마다 겸손히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 가운데 오십니다."

 

프란치스코는 여기에서 하느님의 존재 방식을 보았습니다. 하느님은 힘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권위로 사람들을 굴복시키지 않으십니다. 겸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여십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을 "겸손"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우리는 흔히 겸손을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에게 겸손은 먼저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인간이 겸손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겸손하셨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겸손은 하느님의 겸손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향하여 흘러온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육화는 또한 하느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만일 세상이 악하기만 한 곳이었다면 하느님께서는 세상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만일 인간의 몸이 하찮은 것이었다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만일 피조물이 구원의 대상이 아니었다면 하느님께서는 피조물과 함께 사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육화는 세상이 하느님께 버림받은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깊이 드러나는 자리임을 선언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의 기도는 세상을 떠나는 기도가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발자취를 발견하는 기도입니다.

 

아이의 웃음 속에서, 노인의 주름진 손에서, 병자의 신음 속에서,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바닥에서, 숲과 들판과 바람과 새들의 노래 안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기도는 눈을 감아 세상을 잊는 것이 아니라, 눈을 열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입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들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피조물을 더 소중히 품게 됩니다. 왜냐하면 육화하신 말씀께서 바로 그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가 나환자를 끌어안았던 것도, 가난한 이들을 형제라 불렀던 것도, 태양과 달과 바람과 물을 형제자매라고 노래했던 것도 모두 이 육화의 신비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육화는 하나의 교리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기도는 이 삶의 방식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께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우리 안에 태어나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세상 밖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살아가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인간답게 드러내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칸 기도의 혁명입니다.

 

기도의 방향이 바뀌면 삶의 방향도 바뀝니다. 높은 곳을 바라보던 사람은 낮은 곳으로 걸어가게 되고,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던 사람은 자신을 내어주기 시작하며, 성공을 추구하던 사람은 사랑을 선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중심에 육화하신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얼굴을 보여 주실 뿐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결국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는 과정이며, 육화는 그 길의 출발점이자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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