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영적 여정 3. 하느님께로 오르는 사다리와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하느님
상승의 영성에서 육화의 영성으로
기도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오랫동안 하느님께 올라가는 길을 찾아왔습니다. 높은 산을 오르듯, 한 계단씩 자신을 정화하고, 욕망을 벗어 버리고, 감각을 초월하며, 마침내 순수한 정신으로 하느님을 뵙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영적 여정은 수많은 수도승들의 삶을 통하여 아름답게 꽃피었습니다. 그들은 인간 존재가 하느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상승하는 순례자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전통 안에서 기도는 하나의 사다리였습니다. 한 계단을 오르면 이전보다 더 깊은 침묵이 있었고, 또 한 계단을 오르면 더 큰 비움이 있었으며, 마침내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맛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독서와 묵상과 기도와 관상이라는 단계는 단순한 수행의 과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가 하느님께로 향하는 질서 있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이 길은 참으로 귀한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교만을 꺾고, 욕망을 정화하며,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훈련을 통하여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키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수도승들이 흘린 눈물과 침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영적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세상을 버린 것이 아니라, 세상을 올바로 사랑하기 위하여 먼저 하느님을 찾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이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그 중심축을 놀라울 만큼 새롭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인간이 하느님께 올라가는 이야기보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시는 이야기를 먼저 바라보았습니다. 그에게 복음은 인간의 상승이 아니라 하느님의 하강이었습니다. 이것이 육화의 신비입니다. 영원하신 말씀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들어오셨다는 선언입니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함을 입으셨고, 영원하신 분이 시간을 살아가셨으며,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삶을 당신의 삶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프란치스칸에게 기도의 첫걸음은 사다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내려오신 하느님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더 많이 기도해야 하고, 더 많이 희생해야 하며, 더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그보다 먼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당신 곁에 와 계시는데, 왜 아직도 멀리 계신 분처럼 찾고 있는가?" 이 질문은 기도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우리 삶 속으로 모셔 오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 삶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굳어 있는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존재가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의 기도는 존재의 눈을 뜨는 기도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새 한 마리에서도 하느님의 선하심을 보았고, 작은 꽃 한 송이에서도 창조주의 아름다움을 읽었습니다. 나환자의 일그러진 얼굴에서도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만났고, 형제들의 연약함 안에서도 성령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환상을 본 것이 아니라, 육화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더 이상 하느님을 방해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는 장소였습니다. 피조물은 더 이상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창조주의 사랑을 노래하는 형제자매였습니다. 관계는 수행을 방해하는 소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시는 성사적 공간이었습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칸 영성이 수도승 전통에 더한 새로운 빛입니다. 사다리는 하늘을 향해 올라갑니다. 그러나 사랑은 아래로 내려옵니다. 사다리는 인간의 갈망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육화는 하느님의 갈망을 보여 줍니다. 사다리는 인간이 하느님께 다가가는 길이라면, 육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길입니다. 복음은 이 두 길 가운데 후자를 먼저 선포합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깊은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칸의 기도는 끊임없이 내려가는 기도입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에서 내려와 낮아지는 기도이며, 소유하려는 마음에서 내려와 내어주는 기도이고, 판단하려는 자리에서 내려와 이해하려는 기도이며, 지배하려는 자리에서 내려와 섬기려는 기도입니다. 그 내려감의 끝에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내려간 그 자리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이 그랬고, 나자렛의 목수 집이 그랬으며, 갈릴래아의 길가가 그랬고, 골고타의 십자가가 그러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인간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의 영적 여정은 하늘을 향한 비상이 아니라, 사랑을 향한 하강입니다. 내려갈수록 우리는 하느님께 가까워지고, 작아질수록 우리는 더욱 자유로워지며, 자신을 내어줄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 이것이 성 프란치스코가 자신의 삶으로 증언한 복음의 길이며, 오늘도 우리를 초대하는 기도와 영적 여정의 참된 방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