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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영적 여정 1. 올라가는 여정이 아니라 내려오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여정

"당신이 잡은 것을 굳게 붙드십시오.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신속한 속도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두 발로, 먼지 하나 일으키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프라하의 아녜스에게 보낸 편지)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

기도는 어떤 특별한 기술이 아닙니다.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한 방법도 아니며,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설득의 언어도 아닙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가장 깊은 관계이며, 그 관계 안에서 인간 존재가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의 여정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를 믿고 있으며, 어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일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하느님을 닮아갑니다. 엄격한 심판관만을 믿는 사람은 자신도 타인을 쉽게 심판하게 되고, 모든 것을 계산하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신앙도 계산과 보상의 논리 안에 가두게 됩니다. 반대로 끝없이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느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도 조금씩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도 자비가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의 말을 하느님께 전하는 시간이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빚어 가시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자신이 변화됩니다. 기도의 깊이는 말의 많고 적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오래 기도했는가보다, 그 기도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문제는 언제나 하느님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하느님을 믿고 있는가 하는 질문은, 곧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멀리 계신 분이라고 믿으면 신앙은 의무가 되고, 하느님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이해하면 삶은 긴장과 불안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보다 먼저 다가오시는 사랑이시며,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중심에서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분임을 깨닫게 될 때, 기도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함께 머무는 기쁨이 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시대마다 서로 다른 하느님의 모습을 그려 왔습니다. 어떤 시대에는 하느님의 초월성이 강조되어 세상은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고, 또 어떤 시대에는 하느님의 정의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신앙은 두려움과 죄책감 속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사랑만을 말하면서 십자가의 무게와 인간의 책임을 외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신앙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성장은 하느님에 대한 이해의 성장이며, 동시에 인간에 대한 이해의 성장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더 깊이 알아갈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일수록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새롭게 경험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과 자신을 아는 지식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독특한 빛을 발합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높은 하늘을 향한 상승으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은 인간이 도달해야 하는 먼 목표가 아니라, 이미 인간에게 내려오셔서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사랑이셨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육화하신 말씀을 통하여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칸 기도의 가장 큰 전환입니다. 기도는 세상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피조물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안에 스며 있는 창조주의 숨결을 알아보는 일이며,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성당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가난한 이의 손에서, 병든 이의 눈빛에서, 형제와 자매의 미소 속에서, 그리고 이름 없는 들꽃과 새들의 노래 속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칸 기도의 길은 관계의 길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깊어지고, 사람과의 관계는 피조물과의 관계 안에서 더욱 넓어집니다. 이 모든 관계의 중심에는 육화하신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다가오셨고,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기도는 이 사랑의 순환 안으로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그 영적인 여정을 함께 걸어가라는 초대입니다. 하느님께로 올라가기 위해 애쓰는 여정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오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은 높은 곳으로 오르는 길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깊은 중심으로 내려가는 길이며, 그 중심에서 만난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평생 찾아 헤매던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우리를 찾아오고 계셨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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