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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이 사랑이 되기까지 3.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바다

 

복음은 언제나 한 사람의 갈망을 찾아옵니다. 말씀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가장 참된 갈망을 깨울 때 비로소 인간은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씨앗처럼 모든 사람의 귀에 떨어지지만, 그 씨앗이 생명이 되는 순간은 한 영혼이 그 말씀 안에서 자기 존재의 이름을 발견할 때입니다. 그때 말씀은 더 이상 글이 아니라 생명이 되고, 계명이 아니라 사랑이 되며, 명령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려 온 귀향의 부름이 됩니다.

 

아시시의 젊은 프란치스코는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았고, 젊은이들이 꿈꾸던 명예와 성공을 좇았으며, 기사로서 이름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허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세상이 성공이라 부르는 것들을 가까이할수록 그의 영혼은 더욱 멀리 떠나가는 자신을 느꼈고,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도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이 그의 마음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 하느님의 이름을 분명히 알지 못했지만, 이미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이미 그것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습니다. 갈망은 언제나 의식보다 먼저 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음이 그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말고,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성경 말씀이었지만, 프란치스코에게는 하늘이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말씀은 그의 귀를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닫혀 있던 그의 심장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평생 찾던 것은 부도 아니었고, 명예도 아니었으며, 세상이 약속하는 안전도 아니었다는 것을. 자신이 진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복음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자유였다는 것을.

 

그는 외쳤습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바다.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다."**

 

이 외침은 어떤 감동적인 결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마침내 발견한 사람의 탄성이었습니다. 잃어버렸던 이름을 되찾은 사람의 기쁨이었고, 오랫동안 헤매던 사람이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 짧은 한마디는 한 인간의 인생 전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참된 갈망은 사람을 설명하게 하지 않습니다. 참된 갈망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영혼이 참으로 원하는 것을 만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곧바로 신발을 벗었습니다. 지팡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지갑을 버렸습니다. 허리에 매고 있던 가죽 띠를 새끼줄로 바꾸었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포기라고 불렀지만 프란치스코는 그것을 자유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가진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비로소 자신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붙잡고 있던 것들로부터 풀려난 것입니다. 복음은 그의 손에서 무엇인가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두 손을 비워 하느님을 붙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질수록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프란치스코는 많은 것을 내려놓을수록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움켜쥔 손으로는 아무도 끌어안을 수 없지만, 빈손은 세상 전체를 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사람은 결국 삶에 붙들리지만,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은 삶보다 더 큰 사랑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설이며,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그날 이후 프란치스코의 갈망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은 가난한 사람들을 향하였고, 그의 발걸음은 나환자들을 향하였으며, 그의 손은 버림받은 이들을 향하여 열렸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언제나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흘러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사람을 외면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작은 이들의 얼굴을 통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망은 관계를 낳습니다. '어떤 것'을 원하는 사람은 결국 그것을 소유하려 하지만, '당신'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내어주게 됩니다. 소유는 경계를 만들지만 사랑은 길을 만듭니다. 욕망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지만 갈망은 더 깊이 사랑하려고 합니다. 욕망은 사람을 경쟁하게 만들지만 갈망은 사람을 형제로 만듭니다. 프란치스코는 복음을 들은 그날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함께 살아가는 형제와 자매였고,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의 얼굴이었으며, 세상은 소유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찬미해야 할 창조의 집이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복음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많이 들었느냐가 아니라, 단 한 말씀이라도 우리 존재를 뒤흔들 만큼 들었느냐는 것입니다. 복음은 지식을 늘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삶을 바꾸기 위해 주어진 말씀입니다. 어느 날 우리도 프란치스코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바다." 그날 우리의 삶은 비로소 새로운 방향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세상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부터 바라셨던 바로 그 사람이 되어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갈망은 언제나 선택을 요구합니다. 두 마음으로는 한 길을 걸을 수 없고,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 없으며, 두 개의 왕국을 동시에 세울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갈망은 내 왕국을 내려놓을 용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용기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자유의 시작입니다. 내려놓음은 상실이 아니라 더 큰 생명을 위한 공간이며,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성령께서 머무르실 거처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의 외침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울려 퍼집니다.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바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조용히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는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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