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의 현실은?
흔들리는 반석은 본질의 위기를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반석은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 고백’과 ‘하느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현대 교회의 현주소는 세속화와 물질주의의 거센 파도로 인해 이 견고한 기초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세속화와 물량주의는 교회의 규모나 재정이 성공의 척도가 되는 현상이 심화되면서, 낮아짐과 섬김이라는 복음의 본질보다 세상의 성공 방정식을 좇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신앙의 개인화는 신앙이 삶 전체를 변혁하는 강력한 능력이 되기보다, 개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심리적 위안이나 취미 생활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사회적 신뢰의 하락이 가져온 세상과의 단절은 과거 교회가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시절에 비해, 오늘날 교회가 마주한 사회적 시선은 냉정합니다. 그중 하나는 독선적 이미지와 소통 부재일 것입니다. 세상과 이분법적으로 선을 긋고 소통하기보다, 교회만의 언어와 논리를 고집하면서 사회적 고립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공공성의 상실을 이야기 합니다. 교회가 지역 사회의 아픔을 껴안고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대계명을 실천하기보다, 개별교회의 중심주의에 갇혀 공공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뼈아픈 현주소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전환점 위에 선 교회는 새로운 길을 향한 모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 속에서 ‘진짜 반석’을 다시 찾으려는 긍정적인 움직임과 변화의 현주소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본질로의 회귀는 화려한 건물이나 대형 집회 대신, 한 사람의 진정한 제자를 키우고 본질적인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려는 소형 교회, 가정 교회, 선교적 교회의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첫째, 삶의 자리로 찾아가는 교회로써 건물이라는 공간에 갇히지 않고, 성도들이 흩어진 삶의 자리(일터, 가정, 지역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정체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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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치유자로써의 교회, 기후 위기, 고독사, 양극화 등 현대 사회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그 속에서 묵묵히 이웃을 섬기며 ‘관계적 선(善)’을 실천하는 숨은 교회들이 여전히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현주소는 어쩌면 ‘거센 비바람과 홍수’를 맞이한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모래 위에 세워진 것들은 무너지겠지만, 역설적으로 이 위기는 무엇이 진짜 반석인지를 구별해내는 정화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외형적인 화려함을 걷어내고, 그리스도라는 견고한 반석 위에서 이웃을 향해 낮은 자세로 손을 내밀 때, 교회는 다시금 세상의 소망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반석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며, 그 삶을 관계 안에서 살아내는 존재 방식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교회를 개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복음이 되었고, 그래서 교회는 그의 삶을 통해 새로워졌습니다.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이 세우려 하신 것은 돌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당신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였습니다. 그 반석은 베드로 개인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며, 제도만도 아닙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는 신앙 고백이며, 그 고백을 삶으로 증명하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을 소유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을 살아내는 공동체이며, 진리를 말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진리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세속화와 물질주의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교회 안에도 깊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어느새 낮아짐보다 높아짐을, 섬김보다 성공을, 복음보다 효율을, 형제보다 조직을 앞세우도록 유혹합니다. 신앙은 삶을 바꾸는 힘이기보다 개인의 위안을 위한 종교적 소비가 되고, 교회는 세상을 품는 품이기보다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역설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복음은 언제나 위기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크게 지으신 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하느님의 거처로 만드신 분이셨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 역시 무너져 가는 작은 성당을 고치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결국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은 돌담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권력을 선택하지 않았고, 가난을 선택했습니다. 높은 자리를 원하지 않았고, 가장 작은 형제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소유하려 하지 않았고, 내어주기를 선택했습니다. 바로 그 삶 자체가 교회를 다시 반석 위에 세우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교회가 다시 반석 위에 서려면 더 큰 건물을 세우기보다 더 깊은 관계를 세워야 합니다. 더 많은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경청이 필요하고, 더 큰 영향력보다 더 깊은 사랑이 필요합니다. 복음은 강론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식탁에서, 병실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 곁에서,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끝내 품어 주는 관계 안에서 증명됩니다. 교회는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세상을 끌어안기 위해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말입니다.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끝내 사랑을 선택하는 믿음입니다. 반석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반석은 완전한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감싸며 함께 회개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견고함은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오고, 신뢰는 사랑을 통해서만 얻어집니다.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복음으로, 다시 형제성으로, 다시 세상 속으로"라는 초대는 바로 이 반석을 다시 찾으라는 부르심입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고, 다시 형제성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누구도 경쟁자가 아닌 형제로 바라보는 것이며,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세상을 교회로 끌어들이려 하기보다 교회가 먼저 세상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높은 첨탑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이의 눈물을 닦아 주는 손길에서, 서로를 끝까지 기다려 주는 인내에서, 나보다 형제를 먼저 살리는 선택에서, 용서와 화해를 먼저 시작하는 용기에서, 자신을 비워 다른 이를 살리는 성체적 삶에서 드러납니다. 그곳에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고, 그곳에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반석은 멀리 있는 돌이 아니라,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 안에서 오늘도 조용히 세워지고 있으며, 그 살아 있는 관계의 집이야말로 세상이 아무리 흔들어도 무너질 수 없는 참된 교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