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간에 내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믿음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 기도는 우리 신앙의 가장 깊은 중심을 열어 보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 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 됨은 단순히 마음이 잘 맞는 인간적 화합이 아닙니다. 갈등이 없고 의견이 같은 상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신 하나 됨은 성부와 성자께서 서로 안에 머무르시는 삼위일체적 사랑의 일치입니다.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이 말씀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초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밖에서 그분을 바라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흐름 안으로 불림 받은 존재입니다.
성부께서는 성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성자께서는 받은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움켜쥐지 않으시며 다시 성부께 돌려드리십니다. 성령께서는 그 사랑의 흐름 안에서 끊임없이 생명과 친교를 이루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은 소유의 생명이 아니라 내어줌의 생명입니다. 붙잡는 생명이 아니라 흐르게 하는 생명입니다. 자기중심의 닫힌 완성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자신을 비우고 건네는 영원한 선의 흐름입니다.
프란치스칸 내적 가난은 바로 이 삼위일체적 생명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가난은 단순한 결핍이 아닙니다. 가난은 하느님의 선이 내 안에서 막히지 않도록 나 자신을 비워 드리는 영적 태도입니다. 내가 가진 생명도, 내 안의 선한 마음도, 내가 받은 은총도 본래 내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받은 것을 감사로 되돌려드리고, 되돌려드린 것을 다시 이웃에게 흘려보냅니다. 이것이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았던 가난입니다.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붙들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형제로 맞아들일 수 있었던 가난입니다. 태양도 형제요, 달도 자매요, 물과 불과 바람과 대지도 하느님의 선을 전하는 친교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하느님을 붙잡는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가난입니다. 내 힘으로 나를 완성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나의 부족함과 무력함까지도 하느님 앞에 열어 드리는 신뢰입니다. 그래서 참된 믿음은 언제나 겸손을 낳고, 겸손은 언제나 친교를 낳습니다. 자기 안에 가득 찬 사람은 타인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타인의 다름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다름 안에서 하느님 선의 또 다른 빛을 알아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은 군림하는 영광이 아닙니다. 높아져 남을 누르는 영광이 아닙니다. 그분의 영광은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자신을 내어주어 살리는 사랑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 되는 길도 권리를 주장하는 데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내 뜻을 관철하는 데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먼저 낮아지고, 먼저 들어주고, 먼저 용서하고, 먼저 자리를 내어줄 때 그리스도의 영광은 우리 가운데 드러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믿음은 결국 관계 안에서 검증됩니다. 기도 안 에서 받은 은총은 이웃 앞에서 자비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깨달은 진리는 공동체 안에서 견딤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안에 머문다는 고백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와 겸손한 몸짓 하나로 드러나야 합니다.
내적 가난은 나를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나를 되찾는 일입니다. 내 안에 가득 찬 두려움과 소유욕과 자존심을 비울 때, 그 자리에 하느님의 선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때 나는 더 이상 중심이 되려 하지 않고 도구가 됩니다. 더 이상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사랑이 지나가도록 허용합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고 좋으신 주님, 찬미받으소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 찬미는 가난한 영혼의 가장 깊은 고백입니다. 아무것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 영혼만이 모든 것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선물임을 아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다시 찬미로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더 많이 소유하는 믿음이 아니라 더 깊이 비워지는 믿음입니다. 더 강하게 주장하는 믿음이 아니라 더 넓게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더 높이 올라가는 믿음이 아니라 더 낮은 자리에서 선을 흐르게 하는 믿음입니다.
오 자비롭고 선하신 하느님!
우리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나누시는
거룩한 사랑의 대화가 울려 퍼지게 하소서.
내 영혼의 가장 가난한 자리에서
하느님의 선이 시작되게 하소서.
내가 움켜쥔 것을 내려놓을 때
이웃을 살리는 은총이 흐르게 하소서.
내가 비워진 만큼 주님의 사랑이 머물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 되게 하소서.
서로를 소유하지 않고 사랑하게 하소서.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품게 하소서.
서로를 이기려 하지 않고 살리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인 것은 같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사랑 안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은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하느님의 선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상호 간에 자신을 내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선에 참여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프란치스칸 내적 가난이 우리에게 열어 주는
가장 아름다운 복음의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