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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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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고독 속에서 길어 올린 사랑의 편지 1

 

사랑하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보여준 글썽이는 눈물에 담긴 사연들을 영의 현존 아래에서 떠 올립니다. 창밖으로 나직이 들려오는 봄비 소리에 눈을 뜨는 아침입니다. 밤새 메말라 있던 대지를 적시는 빗방울의 숨결은 오래전부터 나를 향해 오고 있었던 위로처럼 조용하고도 다정합니다. 세상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고, 분주함은 문밖에 머물러 있으며, 오직 빗소리만이 창가에 기대어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침에는 문득,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받고 있는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때때로 순결한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봄비는 결코 요란하지 않습니다. 비는 높은 곳을 차지하려 하지 않고, 가장 낮은 곳으로 먼저 내려갑니다. 풀잎 끝에 맺히고, 흙의 갈라진 틈으로 스며들며, 눈에 띄지 않는 뿌리를 적십니다. 은총도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강할 때보다 약할 때 더 선명하게 다가오고,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보다 모든 것이 무너진 듯한 순간에 더 깊이 스며듭니다. 그것은 자격을 증명한 이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는 존재에게 조용히 내려앉는 선물입니다. 봄비가 유리창에 투명한 길을 남기듯, 그 사랑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두려움과 자기 의심의 먼지를 씻어 내리고, 마음 깊은 곳을 다시 맑게 열어 줍니다.

 

고독은 외로움과 같지 않습니다. 외로움이 결핍의 통증이라면, 순결한 고독은 하느님 앞에 홀로 서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사람들의 시선도, 역할도, 이름도, 기대도 잠시 내려놓고 오직 한 존재로 서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꾸미지 않은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됩니다. 내 안에 감추어 두었던 연약함, 설명하기 어려운 상처,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목마름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하느님은 그 연약함 때문에 등을 돌리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그 연약함을 가장 먼저 어루만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하고 떨며 묻던 마음은, 빗물에 젖은 흙처럼 차츰 부드러워지고, 마침내 나는 이미 사랑받고 있었다는 고백 앞에 잠잠해집니다.

 

순결하다는 것은 상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는 영혼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순결은 상처를 지닌 채 다시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용기이며, 아픔을 통과한 뒤에도 선함을 놓지 않는 마음의 투명함입니다. 봄비를 머금은 흙이 유난히 깊은 향기를 내듯이, 고독을 깊이 살아낸 영혼은 세상 앞에서 조용한 향기를 풍깁니다. 그 향기는 자기 과시의 냄새가 아니라, 눈물 속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은 사람에게서만 풍겨 나오는 생명의 향기입니다. 고독을 견뎌 본 사람은 타인의 침묵을 함부로 깨뜨리지 않고, 타인의 눈물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며, 다른 이의 내면을 서둘러 해석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사랑이란 소유가 아니라 존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빗줄기는 저마다 따로 떨어지지만, 결국 한 대지를 함께 적십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고독 속에서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의 사랑 안에 연결된 존재들입니다.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지만, 서로의 존재를 축복해 줄 수는 있습니다. 서로의 상처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존중으로 곁에 머물 수는 있습니다. 순결한 사랑은 바로 거기에서 피어납니다. 상대를 붙잡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아끼는 사랑, 나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의 고독까지도 거룩한 것으로 존중하는 사랑입니다.

 

마음 안에 스며든 사랑은 결코 머물러 있기만 하지 않습니다. 비가 내려 고이면 시내가 되고, 시내가 모여 강이 되며, 강은 마침내 더 넓은 생명의 자리로 흘러가듯이, 내 안에 차오른 사랑 또한 반드시 누군가를 향해 흘러갑니다. 참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지키는 데만 모든 힘을 쓰지 않습니다. 받은 용서를 나누고, 받은 위로를 건네며, 자신을 적셔 준 은총의 기억으로 타인의 메마른 마음 곁에 조용히 우산이 되어 줍니다. 사랑은 붙들어 두는 감정이 아니라 흘러가게 해야 완성되는 생명의 움직임이기 때문입니다.

 

봄비 내리는 아침은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은총은 언제나 소리 없이 오며, 사랑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흐르고, 고독은 우리를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가장 진실한 자리로 데려가는 축복의 길이라고. 그러므로 오늘 이 아침, 그대들의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쓸쓸한 빈손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길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빈 그릇일지 모릅니다. 창을 적시는 빗방울의 숫자만큼이나 섬세한 사랑이 지금 그대들의 영혼 위에 내려앉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어떤 업적이나 성공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존귀한 사람입니다.

 

빗소리에 씻겨 내려간 마음자리마다 고요한 평화가 머물기를 바랍니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대들만의 맑은 향기와,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그대들의 깊은 고독 안에서, 하느님께서 오늘도 조용히 사랑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부르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그대들 안에 고여 있지 않고, 한 사람의 말이 되고, 한 번의 용서가 되고, 한 번의 따뜻한 시선이 되어 세상으로 흘러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봄비는 단지 계절의 비가 아니라,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는 하늘의 낮은 음성처럼 들립니다.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복됩니다. 그 음성 앞에 잠잠히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깊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시 세상에 흘려보내는 사람은, 비 내리는 아침마다 하느님의 마음을 닮아 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봄비 내리는 이 아침, 순결한 고독에서 길어 올린 사랑을 담아 그대들의 순결한 마음이 흐르는 유역에 흘려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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