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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함 속에 피어난 지고한 사랑

 

하늘이 스스로 낮아져 땅의 문지방을 넘던 날, 천사의 인사는 화려한 궁정의 휘장 사이가 아니라 이름 없이 가난한 한 처녀의 낮은 방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세상은 높고 강한 것들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반대의 길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레와 번개로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침묵과 기다림과 수락의 떨림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라 베르나의 외로운 기도처에서 흘렸던 불꽃 같은 눈물처럼, 우리도 오늘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가 찾는 하느님은 높은 곳의 찬란한 권능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가난하게 내려오신 분이라는 것을. 육화는 단지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을 입으셨다는 교리적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스스로를 낮추는 방식이며,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존재의 숨결 안으로 들어오시는 지극히 놀랍고도 다정한 사건이었습니다. 전능이라는 옷을 벗고 연약함이라는 옷을 입으신 분, 영원하신 분이 시간 안으로 들어오시고, 충만하신 분이 결핍의 한복판을 당신의 자리로 삼으신 사건, 바로 그것이 육화입니다. 그러므로 구유는 단지 아기 예수의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존재 방식의 상징입니다.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짐, 소유가 아니라 비움, 지배가 아니라 함께 있음, 그것이 하느님 사랑의 문법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는 그래서 더욱 깊고 눈물겹습니다. 그 한마디는 단순한 순종의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열어 하느님의 비천함을 받아들이는 환대였습니다. 자신의 계획을 앞세우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일, 그것은 가장 큰 믿음이면서 가장 깊은 가난입니다. 마리아는 아무것도 붙들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비운 이의 태중에서 말씀이 살이 되었고, 그분의 낮아지심은 한 여인의 겸손한 동의 안에서 역사의 몸을 얻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사랑한 것은 바로 이 낮아지심의 신비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멀리 계신 위엄의 왕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더기 같은 인간 조건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안으로 기꺼이 들어오신 가난한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탄을 생각할 때마다 울었고, 구유를 묵상할 때마다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그에게 육화는 교리 이전에 상처 입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극진한 연민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 위에 군림하지 않으시고, 우리 곁으로, 우리 아래로, 우리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 낮아지심 안에서 프란치스코는 참된 힘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사랑은 결코 위에서 명령하지 않고, 아래로 내려와 함께 견디며 함께 살아내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말씀이 살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인간의 몸이 더 이상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세상의 작고 연약한 것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품을 수 있는 거룩한 자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육신은 가난한 이의 마른 손과, 병든 이의 상처와, 버려진 이의 외로움과, 굶주린 이의 떨리는 배고픔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자리에서 그분은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보이십니다. 우리는 이제 보잘것없는 이의 얼굴을 외면하면서 육화의 신비를 말할 수 없습니다. 형제의 상처를 지나쳐 가면서 구유 앞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화는 과거의 기념이 아니라 오늘 다시 살아야 하는 복음의 방식입니다. 내 안에 있는 교만과 자기중심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고, 타인의 연약함을 판단하지 않고 끌어안으며, 내 자리를 조금 낮추어 누군가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 바로 거기에서 육화는 다시 시작됩니다.

 

프란치스코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마음과 몸에 품고 형제자매를 사랑으로 돌볼 때,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낳는 어머니가 됩니다. 복음은 입술로만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살과 시간과 관계의 자리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내가 조금 더 온유해질 때, 조금 더 가난해질 때, 조금 더 기꺼이 자리를 내어줄 때, 하느님은 다시 세상 안으로 오십니다. 육화의 신비는 결국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는 가장 부드럽고도 가장 강한 표지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비천함을 멀리서 동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의 추위를 바라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친히 떨리는 몸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기 전에 먼저 눈물 흘릴 수 있는 눈을 가지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높아지려는 세상의 모든 욕망을 거슬러 하느님은 낮아짐으로 가장 높으신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높이 오르는 영성이 아니라 더 낮아지는 사랑입니다더 많이 소유하는 경건이 아니라 더 깊이 비워 내는 순명입니다내가 하느님을 위해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하느님께서 내 작은 삶 안에 머무르실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그 빈자리에서 사랑은 잉태되고겸손한 마음에서 복음은 다시 살이 되며가난한 관계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소리 없이 자라납니다.

 

,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느님, 당신은 높음으로 빛나신 것이 아니라 낮아지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 마음의 어둠을 밝혀 주시고, 당신의 비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이 우리를 위해 기꺼이 가난해지셨듯 우리도 우리 안의 교만한 높이를 내려놓고, 작은 이들과 함께 걷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의 하루가 또 하나의 구유가 되고, 우리의 마음이 또 하나의 마리아의 태중이 되며, 우리의 관계가 또 하나의 살아 있는 복음이 되어 온 세상 피조물과 더불어 조용하고 깊게 노래하게 하소서.

 

2026. 3. 25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에

병동에서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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