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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밖으로 기울어지는 하느님의 마음

성경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난한 이들의 우선성에 대하여

 

성경에서 얻는 진정한 영감은 언제나 아래로 기울어지는 하느님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 마음은 높은 곳에 앉아 세상을 판단하는 권력의 시선이 아니라,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조용히 몸을 숙이는 사랑의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이야기는 중립적인 기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분명한 방향을 가지고 흐릅니다. 그 방향은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향한 우선성입니다. 이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편들기 위한 인간적인 감정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유에서 흘러나오는 선택이며 초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보편적 사랑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 자리, 가장 먼저 부서진 삶의 가장자리로 사랑의 물줄기를 흘려보내십니다. 마치 산 위에서 시작된 샘물이 자연스럽게 낮은 골짜기를 향해 흐르듯이 하느님의 은총 또한 가장 낮은 곳으로 먼저 흘러갑니다.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편향적입니다. 그 편향은 배타적인 편견이 아니라 상처 입은 곳을 먼저 돌보는 사랑의 기울기입니다. 하느님의 이야기는 늘 울타리 밖에서 시작됩니다. 외국인과 이방인에게 너희도 나의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눈먼 이와 절름발이에게 일어나 걸어라라고 손을 내미시며, 죄인들과 세리들의 식탁에 앉아 그들과 함께 빵을 나누십니다. 사람들이 밀어내던 그 자리에서 하느님은 조용히 자리를 펴고 앉으십니다. 성경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우리는 반복되는 한 장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절당한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아이를 낳지 못해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여인들,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 권력에 짓눌려 침묵 속에서 울던 사람들, 울타리 밖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 하느님의 이야기는 늘 그들의 이름을 먼저 불러 줍니다. 사라의 웃음 뒤에 숨은 긴 기다림, 한나의 성전에서 흘린 눈물, 룻이라느 낯선 이방 여인의 충실함, 문둥병자의 떨리는 손, 세리 마태오의 부끄러운 자리, 십자가 옆에 매달린 이름 없는 죄인의 마지막 숨결. 그 모든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통된 흐름을 발견합니다. 하느님은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안정만을 지키는 분이 아니라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발걸음은 늘 경계선 위를 걷습니다. 성전과 거리 사이, 율법과 자비 사이, 안과 밖의 경계에서 그분은 늘 밖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십니다. 사람들이 저 사람은 죄인입니다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시고, 사람들이 저 여인은 부정합니다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그 여인의 눈물을 받아들이시며, 사람들이 저 사람은 우리와 상관없는 이방인입니다라고 말할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편향입니다. 그러나 이 편향은 어떤 사람을 배제하기 위한 편향이 아니라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사랑의 기울기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성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기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여는 은총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 우선성은 강요되는 윤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적 자유에서 흘러나오는 선택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세상을 바라볼 때 나는 언제나 힘 있는 편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유 안에 머물게 될 때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낮아집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보게 됩니다. 말없이 식탁을 치우는 사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를 하는 사람, 웃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숨기고 있는 사람, 관계의 울타리 밖에서 조용히 서 있는 사람. 그들을 보게 되는 순간 우리는 성경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이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이 됩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성경은 단지 하느님에 관한 책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조용히 아래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울타리 밖에 서 있는 그 한 사람을 향해.

 

 

선의 흐름을 막는 자만심

아래로 흐르는 은총과 관계의 심층에서 성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한 가지 흐름이 보입니다. 하느님의 선은 언제나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흐릅니다. 샘에서 흘러나온 물이 낮은 골짜기를 향해 흐르듯이,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 또한 늘 낮은 자리로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난한 이들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외국인, 이방인, 장애인, 죄인, 거절당한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아이를 낳지 못해 밤마다 눈물을 삼키던 여인들, 쫓겨난 사람들, 핍박받는 사람들, 울타리 밖에 서 있던 사람들. 하느님의 마음은 언제나 그들의 이름을 먼저 부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느님의 선은 막히지 않고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이 흐르기 위해서는 낮은 곳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안에는 이 흐름을 막는 보이지 않는 둑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악의보다 더 깊고, 폭력보다 더 조용하며, 죄보다 더 교묘하게 숨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자만심입니다.

 

자만심은 자기를 크게 보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미묘한 것입니다. 자만심은 내가 중심이 되는 마음입니다. 관계 안에서 내 생각이 기준이 되고, 내 판단이 정의가 되고, 내 감정이 진리가 되는 순간. 그때 선의 흐름은 멈추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도 여전히 부드럽고 행동도 여전히 단정합니다. 그러나 관계의 깊은 곳에서는 작은 막힘이 생깁니다. 누군가 말을 꺼낼 때 우리는 듣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판단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실수를 할 때 우리는 이해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속으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누군가 고통을 말할 때 우리는 공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기준으로 그 고통을 평가합니다. 이때 관계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의 흐름이 막히기 시작합니다. 자만심의 가장 깊은 특징은 자신이 막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자만심은 언제나 정당한 얼굴을 하고 나타납니다. 옳음을 지키려는 마음, 질서를 세우려는 마음, 신앙을 보호하려는 마음,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마음. 그러나 그 중심에 나라는 기준이 자리 잡는 순간 선은 흐르지 못합니다. 선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자만심은 항상 자신을 높이 세우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낮아지는 길을 이야기합니다. 세리의 기도는 들리고 바리사이의 기도는 공기 속에 머무르며, 잃어버린 아들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지만, 스스로 의롭다고 여긴 형은 문 앞에 서서 기쁨의 잔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문이 닫혀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 의로움이 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만심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관계를 경직시킵니다. 사람들은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진심은 조금씩 숨겨지며 대화는 표면만 맴돕니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선이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낮아지면 신기하게도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누군가의 말이 끝까지 들립니다. 누군가의 실수가 공격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이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선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흐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의 우선성은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선이 흐르는 구조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이미 낮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거절당한 사람은 이미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버림받은 사람은 이미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선이 쉽게 흐릅니다. 반대로 자만심이 높은 곳에 서 있으면 은총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흐르지 못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높아질 때 그 사랑은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낮아지는 사람은 하느님의 선을 경험하고,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그 선 앞에서 스스로 막히게 됩니다. 결국 신앙의 깊은 자리에서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나는 선을 만들어내는 사람인가 아니면 선이 흐르도록 길을 여는 사람인가. 선은 언제나 아래로 흐릅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자만심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다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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