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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에서 길어올리는 영의 샘물(야곱의 우물가에서)

 

다시 목마를 수밖에 없는 야곱의 우물은 우리가 일상에서 의지하는 모든 것들, 직업적 성취, 통장의 잔고, 사람들의 평판, 심지어는 과거의 영광스러운 신앙 경험까지도 야곱의 우물과 같습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잠시 안심시키고 가축을 기르듯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바닥을 드러내고 우리는 또다시 두레박을 챙겨 그곳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야만 합니다. 영원히 솟아나는 그분의 생수는 외부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라는 구절에 주목해 봅니다. 영성은 밖에서 누군가 부어주어야 채워지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솟아오르는 능동적인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고인 물이 아니라 '솟아나는 샘물이기에, 날마다 새로운 은혜와 기쁨이 내면에서 자라납니다. 그분은 야곱이 팠던 우물보다 더 깊은 '인간 영혼의 심연'을 채우시는 분임을 증명하셨습니다.

 

도시의 사막에서 만난 영원한 샘

우리는 모두 편의점의 찬 음료와 화려한 카페의 에스프레소로 갈증을 달래며, 콘크리트 숲을 가로지르는 현대의 유목민입니다. 스마트폰 속 무수한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지만, 화면을 끌 때마다 찾아오는 정적은 오히려 더 깊은 목마름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더 좋은 차, 더 넓은 집, 더 높은 이름표를 얻기 위해 세상이라는 메마른 지표면을 끝없이 파헤치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것은 먼지 섞인 흙탕물일 뿐입니다.

 

"밖에서 찾지 마라. 네 안에 우물이 있다." 이 고요한 음성은 2천 년 전 야곱의 우물가, 뙤약볕 아래 앉아 계시던 그분이 오늘날 우리의 소란스러운 사무실과 지하철 안으로 건네시는 서늘한 초대입니다. 그분은 사마리아 여인의 비어 있는 항아리가 아니라, 그녀의 비어 있는 영혼을 보셨습니다. 남의 시선을 피해 정오의 뙤약볕 아래 물을 길으러 와야 했던 그 고단한 발걸음이, 이제는 나의 내면으로 향하는 순례가 되어야 한다고 속삭이십니다. 내 안에는 세상이 알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의 샘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적이나 평가에 따라 수위가 변하는 얕은 웅덩이가 아닙니다. 타인의 인정이라는 비가 내려야만 채워지는 수동적인 공간도 아닙니다. 태초부터 당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설계된, 신의 숨결이 머무는 성소(聖所)입니다.

 

현대인의 신앙은 이제 밖으로 향하는 손을 거두어 안으로 모으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늘의 무언가를 땅으로 끌어내리는 강요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흐르고 있던 생명의 샘줄기를 가로막고 있던 세속의 돌덩이들을 하나씩 치워내는 작업입니다. 불안이라는 돌, 비교라는 모래, 탐욕이라는 자갈을 걷어낼 때, 비로소 우리의 영혼은 다시 솟구치는 생수를 경험할 것입니다. 목마른 자여, 이제 더 이상 타인의 우물을 기웃거리며 빈 그릇을 내밀지 마십시오. 내 심장 가장 가까운 곳, 그 고요한 심연에 귀를 기울이면 그곳에 나를 기다리며 앉아 계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알려주신 대로 내면의 깊은 두레박을 내리십시오. 그곳에서 길어 올린 한 모금의 영성이 나의 메마른 일상을 적시고, 나를 넘어 곁에 있는 다른 목마른 이들에게까지 흘러가는 마르지 않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생명의 샘, 그 근원을 향하여

생명의 샘이 진정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36,9) 우리의 메마른 입술은 더 이상 타인의 웅덩이를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세상이 약속한 신기루 같은 갈증 해소법에 속아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던 방랑을 이제는 멈춥니다. 우리의 모든 갈망이 닿아야 할 종착지는 결국 나를 지으시고, 내 이름을 부르시는 당신의 품이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흐르는 이 샘물은 내가 파 내려간 노력이 아니라, 당신이 거저 부어주신 은총의 수맥입니다. 좌절의 돌덩이가 내면을 가로막아도, 죄책감의 흙탕물이 잠시 시야를 흐려놓아도, 당신께 뿌리 내린 생명의 근원은 결코 마르지 않고 다시 솟구칩니다. 세상은 '채워야 산다'고 다그치지만, 당신은 '내 안에서 이미 충분하다'며 우리를 안심시키십니다. 야곱의 우물가에서 건네신 그 한 모금의 약속이 오늘 나의 고독한 식탁 위로, 지친 퇴근길의 지하철 안으로 흐릅니다. 내 안의 샘이 당신의 생명과 연결될 때, 비로소 나는 나를 사랑할 힘을 얻고, 나아가 곁에 있는 메마른 영혼들에게 젖은 손을 내밀 수 있는 자비와 선의 도구가 됩니다. 주여, 내 안의 샘물을 덮고 있는 세상의 먼지를 걷어내 주소서. 오직 당신께로부터 오는 그 맑은 생수만이 나의 영혼을 영원히 춤추게 함을 믿나이다.

 

다시 목마른 우물과, 안에서 솟는 샘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야곱의 우물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직업이라 부르고, 어떤 이는 통장의 숫자라 부르며, 어떤 이는 사람들의 인정이라 부릅니다. 또 어떤 이는 한때 눈물로 체험했던 신앙의 뜨거운 순간을 마치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처럼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우물은 언제나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조금 마시면 다시 목마르고 조금 채워지면 다시 비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두레박을 들고 같은 길을 걷습니다. 어제도 걸었던 길, 오늘도 걸어야 하는 길.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안전해지기 위해 계산하고 내 존재가 의미 있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 또다시 우물가로 갑니다. 그러나 그 우물은 결코 우리 존재의 깊이를 채우지 못합니다. 야곱이 팠던 우물은 가축을 먹이고 사람의 갈증을 잠시 달랠 수는 있지만 영혼의 깊은 목마름까지는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물을 더 깊이 파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좋은 두레박을 준비하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샘이 될 것이다.” 여기서 복음은 인간의 종교적 상식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우리는 늘 밖에서 길어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은총도, 평화도, 확신도 어딘가에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의지하고, 경험을 붙잡고, 제도를 붙들고, 성공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밖에서 길어 올리는 물이 아니라 너 안에서 솟아나는 샘이 있다.” 그 샘은 외부에서 부어주는 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이 우리 존재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사건입니다. 고인 물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샘입니다. 그래서 그 물은 어제의 체험으로 유지되는 신앙이 아니라 오늘 다시 살아나는 생명입니다. 그 물은 누군가의 인정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사랑받고 있다는 내면의 확신에서 흐르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그 샘을 발견한 사람은 더 이상 우물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돈을 사용하지만 돈에 목마르지 않고, 사람과 함께 살지만 사람에게 매이지 않으며 사목을 하지만 성취에 중독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이미 안에서 흐르는 강을 알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가난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며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생수가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매일 반복해서 걷는 길을 조용히 바라보면 우리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같은 우물로 돌아가는지. 그러나 복음은 오늘도 말합니다. “밖에서 찾는 우물을 떠나라.” 더 깊은 곳에서 이미 샘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샘은 침묵 속에서 들리고 기도 속에서 열리며 사랑을 내어주는 순간 더 크게 솟아납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는 문득 깨닫습니다. 나는 더 이상 물을 길으러 오는 사람이 아니라 물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내 안에서 솟아나는 생수가 다른 이들의 목마름을 적시는 작은 강이 되었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야곱의 우물보다 더 깊은 곳에 이미 오래전부터 하느님의 샘이 우리 안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위로부터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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