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진리는 광야로부터 나옵니다. 고독을 넘어 사랑의 현신으로
광야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를 불러주던 이름도, 나를 증명해 주던 직함도, 나를 둘러싸던 익숙한 온기도, 그곳에서는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 광야는 나를 지탱하던 모든 외적 기둥을 하나씩 거두어 갑니다. 마치 저녁 기도가 끝난 뒤 꺼진 성당의 등불처럼, 하나씩, 하나씩, 내가 의지하던 빛들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남겨지는 것은 단 하나,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부정할 수도 없는 ‘존재하고 있음’이라는 떨림뿐입니다. 나는 그 떨림 앞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만납니다.
광야에서는 배고픔이 스승이 됩니다. 목마름이 질문이 되고, 고독이 거울이 됩니다. 그 거울은 잔인할 정도로 정직하여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것들 속에 숨어 있던 소유의 그림자를 드러냅니다. 내가 정의라고 믿었던 분노 속에 숨겨져 있던 복수의 씨앗을 보여주고, 내가 헌신이라고 부르던 행위 속에 은밀히 스며 있던 인정받고 싶은 갈망을 침묵 속에서 끌어올립니다. 광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은 나의 모든 거짓을 무너뜨리는 가장 정확한 언어입니다. 나는 그 앞에서 변명할 수 없고, 숨을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나는 마침내 나의 탐욕을 봅니다. 타인을 이용하여 나의 존재를 지탱하려 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실은 소유하려 했던 마음의 방향을, 평화를 말하면서도 내 뜻이 관철되기를 바랐던 숨겨진 폭력을 봅니다.
광야는 나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망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회개는 시작됩니다. 회개는 눈물을 흘리는 행위가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행위입니다. 나 자신을 중심으로 흐르던 생의 물줄기를 타인을 향하여 조용히 돌려놓는 일입니다. 광야에서 나는 알게 됩니다. 진리는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열리게 만든다는 것을, 진리는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흐르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흐르기 위해 존재합니다.
광야의 가장 깊은 신비는 고독이 사랑으로 변형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 고독은 나를 무너뜨리는 공허처럼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공허를 견디고, 그 공허 속에 머물러 있을 때, 나는 이상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채우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흐르고 싶어집니다. 누군가의 상처 속으로, 누군가의 어둠 속으로, 누군가의 침묵 속으로. 누군가의 필요 속으로, 광야에서 태어난 사랑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조건을 묻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단지 자신을 내어줍니다. 그때 나는 깨닫습니다. 광야는 사랑을 제거하는 장소가 아니라 사랑이 정화되는 장소라는 것을. 광야에서 제거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가리고 있던 두려움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사라지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거짓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새로운 중심이 태어납니다. 그 중심은 더 이상 ‘나’가 아니라, 흐르는 선(善)입니다.
이제 나는 관계 속에서 하느님 나라의 표지를 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지친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그 곁에 머무르는 순간, 누군가의 실수를 판단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순간,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해답을 주려 하지 않고 함께 아파하는 순간, 그 순간 나는 압니다. 하느님 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선이 흐르는 관계 안에 있습니다. 광야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광야는 나를 세상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나를 세상 속으로 다시 보내기 위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나는 흐르기 위해 존재합니다. 나는 내어주는 몸이 됩니다. 나는 쏟아지는 피가 됩니다. 나는 사랑이 지나가는 통로가 됩니다. 광야는 나를 비워 사랑이 머물 수 있게 한 거룩한 빈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압니다. 큰 진리는 광야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통과한 존재가 사랑이 되는 순간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나를 내어줄 일들이 보입니다.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세상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는 ‘내어줄 자리’를 보게 됩니다. 측은함은 감정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내가 중심에 있을 때 나는 무엇을 받을 것인가를 먼저 봅니다. 그러나 측은한 마음이 열릴 때 나는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가를 먼저 보게 됩니다. 그 순간부터 세상은 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응답해야 할 부름이 됩니다. 지친 얼굴 하나가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머물러야 할 성소가 되고, 말없이 견디고 있는 침묵 하나가 그저 지나쳐도 되는 풍경이 아니라 내 존재가 건너가야 할 다리가 됩니다.
측은한 마음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두르지 않고 들어주는 시간, 판단하지 않고 머물러 주는 침묵, 나의 옳음을 내려놓고 상대의 고통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순명을 보여 줍니다. 그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랑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발견된 필요 앞에서 자신을 거두지 않는 용기라는 것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볼 때 세상은 상처로 가득 찬 곳이 아니라 사랑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자리들로 가득한 곳이 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나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서 조용히 나를 내어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