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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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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심연에서 드리는 주님의 기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한 구절은 기도의 중심이 나의 소원 성취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흐름이 통과되도록 나를 내어놓는 삶임을 드러냅니다. 주님의 기도는 관계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드리는 영의 활동입니다.

 

1.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기도는 하느님을 설득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분은 이미 아십니다. 청하기도 전에,내가 무엇에 상처 입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붙들고 놓지 못하는지. 그러므로 기도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자리 이동입니다. 내가 중심에 서 있던 자리에서 아버지의 중심으로 옮겨 서는 일. 그것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말이 줄어들수록 의지가 부드러워지고, 설명이 사라질수록 신뢰가 자라납니다.

 

2.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이 구절은 내가 거룩해지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내 삶이 그 이름을 가리지 않게 해 달라는 고백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날 선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 내 자존심이 형제 위에 군림하려 할 때, 나는 묻습니다. “지금, 내 태도는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는가, 아니면 흐리게 하는가?” 거룩함은 특별한 순간에 번쩍이는 빛이 아니라, 일상의 관계에서 상대의 얼굴을 존중하는 태도로 드러납니다. 특히 관계 안에 선이 흐르도록 너의 마음을 헤아려 발견한 너의 필요를 말없이 채우는 것, 이것이 거룩함의 진짜 이름입니다.

 

3.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나라는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통치의 방식입니다. 힘이 아니라 자비로, 보복이 아니라 용서로, 계산이 아니라 선물로 다스리는 질서. 아버지의 나라는 누군가가 먼저 사과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누군가가 자존심을 내려놓는 자리에서 조용히 자랍니다. 회의 자리에서, 피곤한 형제의 어깨를 바라보는 눈길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토론의 한복판에서 그 나라는 이미 오고 있습니다.

 

4.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늘은 저항이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땅은 자아가 꿈틀거리는 자리입니다. 이 기도는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강제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주문이 아니라, 내 안의 저항이 녹아내리기를 바라는 청원입니다. 뜻은 사건보다 먼저 관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내가 옳음을 증명하기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순간, 하늘의 질서가 땅의 심장 안으로 스며듭니다.

 

5.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양식은 빵만이 아닙니다. 오늘을 견디게 하는 힘, 오늘을 사랑하게 하는 용기, 오늘을 받아들이는 평화. 수도자의 삶에서 일용할 양식은 형제의 미소일 때가 있고, 침묵 속에서 건네지는 이해일 때가 있으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함께 앉아주는 존재감일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내일의 창고를 채우지 않으시고 오늘의 숨을 유지하게 하십니다.

 

6.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여기서 기도는 가장 날카로워집니다. 용서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흐름의 문제입니다. 내가 용서를 멈추면 하느님의 자비도 내 안에서 막혀버립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문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가장 어려운 수행은 묵묵히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라 형제를 다시 받아들이는 순간입니다. 용서는 하느님을 닮는 가장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7.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유혹은 성공이나 쾌락보다도 자기 의로움일 때가 많습니다. “나는 옳다.” “나는 더 잘한다.” “나는 더 헌신적이다.” 이 속삭임이 가장 은밀한 시험입니다. 악은 큰 죄의 얼굴로 오기보다 작은 비교심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겸손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입니다. 자비를 닫으면 자비 안에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을 움직이기 위한 주문이 아니라 나를 변형시키는 길입니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닮아가는 여정입니다. 당신의 하루 속에서 이 기도는 성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부엌에서, 복도에서, 회의실에서, 조용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관계 속에서 오늘도 조용히 이루어지기를,

 

8. 도구적 존재로서 주님의 기도

이 기도는 나를 통과하여 하느님의 선()이 흘러가도록 중심을 옮기는 심리적 전환입니다. 관계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구조의 변형을 살펴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도구, 나라가 오게 하는 도구,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도구적 존재라는 인식은 단순한 영성적 슬로건이 아니라, 자아 구조 전체를 재배치하는 깊은 심리적 전환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기 중심성의 해체입니다. 그리고 이 해체는 언제나 관계의 현장에서 일어납니다.

 

도구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자아의 구조 안에는 세 가지를 추구하는 인간 심리가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음, 통제하고 싶음, 안전하고 싶음, 도구적 존재로 산다는 것은 이 세 욕구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욕구의 주인을 바꾸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하느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기쁨으로 전환되고 통제하고 싶은 마음은 하느님의 뜻에 신뢰로 참여하는 태도로 바뀌며 안전을 추구하는 마음은 관계 안에서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로 재구성됩니다. 그러나 자아는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도구가 된다는 말은 자아에게는 지워짐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는 이런 저항이 일어납니다. “내가 이용당하는 건 아닐까?”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은 건가?” “내가 항상 먼저 양보해야 하나?” 이 질문들은 영적 미성숙의 증거가 아니라 자아의 정상적인 방어 기제입니다. 도구적 존재는 자기 소멸이 아니라 자기 위치의 재정렬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빛나게 하는 심리적 구조,

아버지의 이름이 빛난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 아니라 상대가 존중받았다고 느끼는 순간입니다. 관계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심리적 지점은 이것입니다. “지금 나는 내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상대의 존엄을 지키고 있는가?” 자아 중심의 관계에서는 항상 평가가 작동합니다. 누가 더 옳은가, 누가 더 헌신적인가, 누가 더 많이 희생했는가, 그러나 도구적 존재는 평가 체계를 내려놓습니다. 왜냐하면 목표가 자기 증명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이 흐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심리적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각 반응 대신 잠시 멈춤, 말하는 대신 경청, 논리적 승리보다 관계적 회복을 우선함, 이 멈춤의 순간이 바로 하늘의 질서가 땅에 내려오는 자리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는 도구, 통제 욕구의 해체

하느님의 나라는 강요로 오지 않습니다. 나라가 오는 심리적 조건은 통제권을 내려놓는 내면의 자유입니다. 관계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힘은 직접적인 지배가 아니라 미묘한 압력입니다. 침묵으로 상대를 죄책감에 빠뜨리기, 표정으로 불만을 전달하기, 은근한 비교로 위축시키기, 이것은 공격적 통제입니다. 도구적 존재는 이 무의식적 통제 패턴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심리적으로 이것은 내가 불안하구나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통제는 대부분 불안에서 나옵니다. 관계가 흔들릴까 두려움, 내 위치가 약해질까 두려움, 존중받지 못할까 두려움, 이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구가 아니라 지배자가 됩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하느님께 이렇게 맡길 수 있습니다. “이 관계의 결과를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이때 아버지의 나라가 옵니다.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도구, 내면 저항의 해체

하느님의 뜻은 사건 이전에 내면의 방향성에서 이루어집니다. 심리적으로 뜻에 순응한다는 것은 자아의 방어기제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대표적인 방어기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합리화-내가 맞아, 투사-저 사람이 문제야. 회피-그냥 말 안 하자, 냉소- 어차피 안 바뀌어, 도구적 존재는 이 방어기제를 정직하게 인식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 두려움을 직면할 때 뜻은 외부에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수용됩니다. 뜻은 억압이 아니라 신뢰의 결과입니다.

 

도구적 존재의 징표들

도구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납니다. 자신을 과도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오해받아도 급히 정정하려 하지 않는다, 인정받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먼저 화해할 수 있다,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되,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이것은 감정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 위에 신뢰가 자리한 상태입니다.

 

도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닙니다. 도구적 존재를 자기 소멸이나 자기 억압으로 이해하면 심리적으로 병이 생깁니다. 억눌린 분노, 만성적 피로, 관계 회피, 수동적 공격성, 도구는 무기력한 사람이 아닙니다. 도구는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차이는 여기 있습니다. 수동성은 나는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고 도구성은 나는 하느님의 선을 선택한다.”라고 말합니다. 이 선택의 주체성은 매우 능동적입니다.

 

도구적 존재는 중심 이동입니다. 도구가 된다는 것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관계 안에서 내 말이 채택되지 않아도 하느님의 선이 드러났다면 이미 성공입니다. 누군가 상처받지 않았다면 이미 나라가 온 것입니다. 누군가 존중받았다면 이미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도구적 존재는 작지만 심리적 멈춤으로 시작됩니다. 말하기 전에 멈춤, 반응하기 전에 멈춤. 판단하기 전에 멈춤. 그 멈춤의 자리에서 하늘은 땅에 닿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자유로워집니다. 주님의 기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기도 중에 가장 완벽한 기도이며 가장 충만한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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