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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0 01:05

거룩한 허기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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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허기 (단식)

 

참된 사랑은 내 배를 채우는 욕망을 멈추는 '단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가두었던 나의 편견과 요구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억압받는 영혼을 자유롭게 내보낸다는 것은, 결국 내 곁의 사람을 내 뜻대로 빚으려던 고집을 부수고 그가 그의 모습대로 숨 쉬게 하는 일입니다. 단식은 배고픈 고통이 아니라, 당신이 내 곁에 없으면 나라는 존재 역시 한낱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나의 곳간을 열어 양식을 나누는 것은 거창한 자선이 아니라, 오늘 밤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헐벗은 당신의 마음 위로 다정한 안부 한 자락을 덮어주는 일이며, 가련하게 떠도는 당신의 방황을 기꺼이 내 마음의 방에 들여놓아 쉬게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다시 멍에를 부수고 서로에게로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내 안의 아집을 굶기고, 대신 당신의 필요를 채우는 이 거룩한 허기를 선택하려 합니다. 불의한 결박을 푸는 손길로 당신의 지친 손을 잡을 때, 비로소 우리의 일상은 끼니마다 축제가 되고, 숨 쉬는 모든 순간은 헐벗은 영혼을 입히는 따스한 옷감이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숨지 않고 서로의 얼굴에서 신의 형상을 마주하며, 부서진 멍에 조각들을 모아 저녁 불을 지핍니다.

참된 단식은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통제하려는 내 의지를 굶기는 것입니다. 내 기대를 굶기고, 내 해석을 굶기고, 내 옳음을 굶기고, 대신 상대의 숨을 살려주는 것 그것이 단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하지 않는다 하셨지요. 이 말씀은 단순한 금식 규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랑이란 현존의 충만입니다. 그러나 신랑이 빼앗긴 듯 느껴질 때, 곧 관계가 식고 침묵이 길어질 때, 우리는 관계의 단식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단식은 굶주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없으면 내가 비어 있음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형제가 멀어질 때, 그가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음식 대신 자기중심성을 끊는 단식에 초대됩니다.

 

단식은 굶주림이 아니라 공간을 내어주는 일 당신을 가두었던 나의 편견과 요구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주는 일단식은 비워서 하느님이 들어오시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비워서 타인이 숨 쉴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충고를 멈추는 단식, 판단을 멈추는 단식, 즉각 반응하지 않는 단식,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기다리는 단식, 그 순간 우리는 평화를 만듭니다. “내 안의 아집을 굶기고, 대신 당신의 필요를 채우는 이 거룩한 허기이 허기는 상실이 아니라 자비의 공간입니다.

 

거룩한 허기란 무엇일까요? 나는 내 배가 아니라 내 마음의 식욕을 들여다봅니다. 어제 하루 동안 나는 무엇을 그렇게 탐했는지. 빵이 아니라 인정이었고, 국물이 아니라 이해받고 싶은 욕망이었으며, 따뜻한 차 한 잔이 아니라 상대의 태도를 내 뜻대로 바꾸고 싶은 은밀한 열망이었습니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대방을 붙들어두고 싶어 했습니다. 당신이 나의 방식으로 생각해 주기를, 나의 속도로 걸어주기를, 내가 그려둔 선을 벗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보이지 않는 실로 당신의 손목을 묶어 두었습니다. 그 실의 이름은 관심이었고, 책임이었고, 때로는 말로 포장된 섬세한 지배였습니다.

 

거룩한 허기란 음식을 덜어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소유하려는 나의 미세한 충동을 굶기는 일.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판단을 내려버리는 내 안의 재판관을 굶기는 일. 형제의 실수 앞에서 은근히 우월감을 느끼는 그 달콤한 자만을 굶기는 일. 나는 배가 고픈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앞에서 나는 자주 떨립니다. 그래서 단식은 어렵습니다. 빵을 끊는 일보다 내 옳음을 끊는 일이 더 쓰리기 때문입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외로움을 모른 척해 왔습니다. 식탁 위에는 반찬이 놓였지만 말없는 침묵은 더 짙게 내려앉았습니다. 형제의 피곤한 눈빛을 보았지만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기도라는 이름의 안전지대 안에 숨었습니다. 나는 하느님과는 친밀했으나 형제와는 조심스러웠습니다.

 

단식은 내면에서 시작되는 영의 활동입니다.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헐벗은 이에게 한 마디 안부를 건네는 일. 충고 대신 차 한 잔을 내미는 일. 정답 대신 곁에 앉아 주는 일. 그 사람을 고치려 하지 않고 그 사람의 필요를 말 없이 채우는 일입니다. 억압받는 이를 풀어준다는 것은 내 곁의 사람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의 속도가 나와 달라도, 그의 기도가 나와 달라도, 그의 침묵이 나를 불안하게 해도, 그를 그대로 두는 것. 그것이 멍에를 부수는 첫 번째 단식일 것입니다.

 

단식은 고통이며 우리는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얻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내 존재도 온전하지 않다는 깨달음. 나는 혼자서 거룩해질 수 없고 혼자서 완성될 수 없다는 진실. 관계의 단식은 상대를 벌주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의존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마음 안에는 수많은 싸움이 있습니다. 말을 삼키는 싸움, 표정을 다스리는 싸움, 형제의 단점을 확대하지 않으려는 싸움. 나는 오늘도 선택해야 합니다. 내 자존심을 먹일 것인가 아니면 굶길 것인가. 단식은 허기를 남깁니다. 그러나 그 허기는 파괴가 아니라 공간입니다. 그 빈자리에 타인의 숨이 들어오고 하느님의 바람이 스며듭니다.

 

내가 한 발 물러날 때 당신은 한 발 숨을 쉽니다. 내가 내 해석을 내려놓을 때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내가 침묵을 선택할 때 하느님은 관계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압니다. 단식은 굶주림이 아니라 자유라는 사실을, 나를 중심에 두지 않아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자유. 형제를 내 뜻대로 만들지 않아도 공동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자유.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발견하기 위해 자기를 굶깁니다. 아집을 굶기고, 조급함을 굶기고, 비난을 굶기고 대신 자비를 먹습니다. 불의한 결박을 푸는 손길로 지친 손을 잡을 때 식탁은 다시 축제가 됩니다.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화해의 표지가 되고 물 한 잔은 용서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숨지 않습니다. 방 안의 기도 뒤에 숨지 않고, 의로움 뒤에 숨지 않고, 상처 뒤에 숨지 않습니다.

 

부서진 멍에 조각들을 모아 저녁 불을 지피며 그 불빛 아래에서 우리는 다시 서로를 바라봅니다. 오늘 나는 당신을 바꾸는 대신 나를 굶기고 당신을 묶는 대신 내 고집을 풀며 당신을 설득하는 대신 당신 곁에 머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거룩한 허기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습니다. 단식은 사랑이 숨 쉴 수 있도록 나를 비워두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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