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6,14–29
오늘 복음은
권력의 연회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통해
양심이 어떻게 침묵하게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헤로데는 요한을 두려워하면서도
그의 말을 즐겨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경청’은
삶을 바꾸는 회개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런 마음의 분열을 두고
인간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진리를 “듣는 척”은 해도
결국 습관과 욕망에 끌려간다고 말합니다.
그는 경고합니다.
“양심의 소리를 미루는 동안
죄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필요처럼 느껴진다.”
헤로데의 비극은
잔혹함보다 먼저 우유부단함입니다.
그는 진실을 알아듣지만,
체면과 시선과 관계의 얽힘 속에서
결단하지 못합니다.
결국 그는
자기 안의 두려움과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채
“맹세”라는 말로 스스로를 묶어 버립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요한의 목소리를
“좋은 말”로만 듣고 끝내고 있지 않은가?
진리가 나를 불편하게 할 때,
나는 침묵을 선택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지 않은가?
아우구스티노는
참된 자유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라고.
오늘 성실의 열매는
큰 결단이 아니라,
작은 자리에서라도
양심의 목소리를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고,
말해야 할 때는 사랑으로 말하는 것.
그 선택이
내 안의 연회를 멈추고
주님의 길을 다시 열어 줍니다.
주님,
제가 진리를 듣고도
미루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사람들의 시선과 체면이 아니라
당신 앞에서의 양심을 더 무겁게 여기게 하시고,
두려움 때문에
옳음을 배반하지 않게 하소서.
성실의 열매로
작은 자리에서부터 진실을 선택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