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나폴리의 성탄 구유(Presepe Napolitano)
작가 : 미상
소재지 : 나폴리 말구유 거리에 전시된 말구유 모델
말구유 경배의 전통은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가 움브레아의 산악 마을 그레치오라는 곳에서 성탄절을 지낼 때 시작된 신심이다. 예수님의 가슴을 지니셨던 성인께서는 어느 해 그레치오라는 시골에서 성탄절을 지내면서 그 시골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성탄절을 구상하게 되었다.
성탄절이라면 대축일이기에 반드시 미사에 참석해야 하나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지역 교우들을 자연스럽게 성탄이 기쁨의 축일이기 보다 또 죄를 짖는 축일이 되기 쉬웠다.
교회는 신자들에게 열심한 삶을 강조하기 위해 축일의 미사 참석을 의무화한 이 선의의 제도가 이런 마을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부담이라는 부작용을 나았기에 성 프란치스코는 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성탄 준비를 했다.
우선 은퇴해서 살고 있는 늙은 사제 한분 모시고 성가대나 다른 장식을 할 수 없는 열악한 처지에서 성인은 동네 사람들이 키우는 소나 양같은 동물들을 동원하고 허약한 노사제가 집전하는 미사에서 성탄의 감동이 시작되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성탄 소식을 알리고 저녁 미사에 초대했을 때 많은 순박한 동네 사람들이 모이고 부제인 성 프란치스코가 열정적인 강론을 하자 신자들은 어느 대성당 성탄 미사 못지 않게 마음의 감동을 받았으며 허약한 사제가 축성한 성체성사를 통해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이때 나타나신 아기 예수님은 무슨 기적적 환생이라기 보다 순박한 신자들의 신심에서 이 장면을 신앙의 숭고한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구유 신심은 13,14세기 중세 신비 신학의 영향으로 대중 신심의 차원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인간의 합일의 상징이라는 신비신학적인 차원으로 승화되었으며 각 나라와 지역 마다 서로 다른 방법으로 다양한 신심을 표현하게 되었다.
말구유 장식과 함께 성탄에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고대 북유럽의 겨울 축제에서 비롯된 풍습 전나무가 많은 북독일에서 고대 북유럽의 겨울 축제에서 비롯된 풍습이 말구유와 함께 정착된 것이다.

<산 마르티노 수도원에 전시된 18세기 작가인 구치니엘로의 말구유>
그런데 나폴리의 성탄 말구유는 다른 곳과 전혀 다른 화려하면서도 성탄의 진면모를 알리는 탁월한 면이 있다는 면에 특징을 두고 있다.
나폴리의 말구유는 예수 탄생 장면 재현으로, 전통적인 성경 속 인물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즐겼던 나폴리 시민들의 일상을 묘사한 다채로운 인물들을 함께 배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예수의 탄생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나폴리 시민들의 삶의 모습까지 담아낸 복잡하고 창의성을 띈 예술적인 작품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나폴리 시의 산 그레고리오 아르메노(San Gregorio Armeno)라는 거리에는 역사 속에서 유명한 말구유들의 거리(Via dei Presepi)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성탄 말구유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제작하는 공방들이 모인 거리이다.
이곳은 성탄 시기에만 사람들을 모우는 곳이 아니라 일년 내내 성탄에 대한 여러 다양한 것들을 준비해서 사람들을 모우는 곳이기에 한마디로 성탄의 분위기가 일년 내내 이어지는 곳이다.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나폴리의 말구유는 다른 곳과 다른 특징이 있다. 일반 말구유는 예수님의 성탄 복음과 설화에서 나타나고 있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표현한다. 가령 마리아 요셉 아기 예수 예수님의 성탄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웃 목동들, 그후 멀리 동방에서 구세주의 성탄 소식을 듣고 찾아와 경배한 삼왕들 등.
오늘 우리에게 익숙한 성탄 복음 확인 수준의 말구유가 대종인데 비해 나폴리의 말구유는 세속적 요소, 즉 활기 넘치는 나폴리의 일상을 함께 등장시킴으로서 예수 성탄이 지닌 성속적 의미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즉, 말구유에 탄생한 아기 예수의 말구유 주위에 모인 나폴리 시민들 특히 17,18세기에 나폴리 사람들의 풍요로운 배경을 등장시키고 있다. 이렇게 당시 활발했던 나폴리의 생기찬 모습으로 가득 채워져 신성한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있다. 전통적인 말구유에 너무 익숙한 사람에겐 좀 어색할 수 있으나 이것은 예수 성탄의 의미를 더 심화시킴과 동시 삶의 현장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요한복음 서문에 나오는 다음 말씀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나폴리 말구유에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폴리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말구유의 주인공들이다. 어부, 정육점 주인, 과일 상인, 빵 굽는 사람, 술집 주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평범한 나폴리 시민들의 모습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하느님 아들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다.
그러기에 나폴리 말구유의 배경은 전통적인 베들레헴의 마구간이라기보다는, 나폴리의 명물인 베수비오 화산 근처의 나폴리 시장이나 낭떠러지, 심지어 로마 시대의 유적지 등으로 설정되어 전통적 말구유와는 전혀 다른 지역적 특색도 강조되고 있다.
또 삶의 즐기움을 즐기는 사람들도 등장시키고 있다. 카드 놀이를 하는 사람, 춤추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등 나폴리 서민들의 흥겹고 소란스러운 일상이 종교적 엄숙함과 대비를 이룬다.
이러한 종교적 요소와 세속적 요소의 결합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선사하고 있다.

<산 마르티노 수도원에 있는 말구유>
먼저 신앙의 일상화이다. 신성한 사건이 일반인의 삶 한가운데서 벌어진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신앙이 특별한 장소나 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에 스며들어 있음을 시각적으로 너무도 강하면서도 자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나폴리 인들이 지닌 예술적 풍요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성경 속 인물들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인간 군상과 세밀한 배경 묘사를 통해 말구유는 단순한 종교 장식을 넘어 하나의 복합적인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기에 말구유를 만드는 거리는 성탄 시기 성당에 설치된 말구유처럼 사람을 불러 모우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공방처럼 항상 많은 사람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처럼 나폴리 말구유는 기존 말구유처럼 성스러운 인물들 사이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배치함으로서 우리가 주의 기도에서 바치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소서.” 라는 종교적 메시지를 나폴리 특유의 현실적이고 활기 넘치는 방식으로 표현한 독창적인 문화유산이다. 나폴리 말구유는 성속이 조화된 하느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좋은 것으로 교회 역사가 일천한 한국 교회에서도 한번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 한국적 말구유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갓과 도포를 입은 성요셉이나 한복의 마리아를 만들기도 하지만 역시 뭔가 좀 어색하다. 이것이 두려워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서구적 취향의 말구유만 고집하다보면 나폴리 인들이 보인 것처럼 하느님은 하늘과 땅에 가득하신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이란 것을 풍부히 표현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나폴리 말구유는 비크리스찬이 대종인 우리 사회에 성탄의 참신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교훈과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는 소위 한류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열풍으로 우리 민족이 지닌 창의성과 진취성을 인정받는 처지인데, 교회의 전례 표현 역시 나폴리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표현했던 말구유적인 표현을 한다면 세계 교회 차원에서 생기를 더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폴리 Via presepe에 전시된 시장 한복판의 말구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