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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가을 편지

 

깊어가는 가을날

나는 내 인생의 오후에

그리움이 흐르는 유역에 살고있는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나이가 들수록 문득문득 세상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젊은 이들의 말은 빠르게 지나가고,

세상은 끝없이 새로워지지만

나는 이제 그 흐름을 억지로 따라잡으려

애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책하지 않고,

그저 나에게 주어진 속도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려 합니다.

 

몸의 속도가 느려지고,

생각이 천천히 움직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느림은 어느새

내 삶의 맛을 깊게 익혀 주었습니다.

급할 이유 없이,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시간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해마다 기억은 늘어가고,

사람은 하나둘 떠나갑니다.

하지만 떠나간 자리마다

오래 묵은 추억이 앉아

나를 부드럽게 감싸주곤 합니다.

 

그리움이 쌓이는 만큼

마음은 더 따뜻해지고,

기억은 어느새 나를 지켜주는

또 하나의 벽난로가 되었습니다.

 

고독과 침묵에도 익숙해졌습니다.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 시간,

그 고요가 이제는

내 마음의 집이 되었습니다.

그곳은 쓸쓸함이 아니라

평화가 조용히 쉬어 가는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압니다.

인생의 오후는 무언가를 잃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천천히 정리하고 마무리하며

더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남아 있는 하루하루가

이미 선물이고,

나는 여전히 창조주께서 빚으신

유일한 아름다움을 지닌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여,

우리의 늦은 오후가 이처럼 고요하고 따뜻하기를,

그리고 당신의 하루에도

하느님의 부드러운 손길이

늘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당신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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