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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6 08:37

빈 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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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서

 

쌀쌀한 바람이

빈들 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이 넓은 자리에서

억새들은 하늘을 향해

조용히 기도하듯 흔들리고,

가을은 소리 없이

마음을 비워내라 속삭인다.

 

겉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함이지만,

비워져 있다는 것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이 드나드실

빈자리를 남겨두었다는 뜻임을

나는 안다.

 

프란치스코가 그랬듯,

손에 무엇도 움켜쥐지 않으려 할 때

비로소 바람의 목소리가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겸손하게 낮아진 눈길은

작은 들꽃 하나에도

형제라 부르게 하고,

서늘한 공기는

내 안에 남아 있는 욕심의 티끌들을

조용히 털어낸다.

 

 

주황빛 해가 낮게 기울어

들판 전체가

금빛 침묵에 잠길 때,

내 마음에도

고요한 그림자 하나 드리워진다.

그 아래서 어지럽던 생각들은

바람에 실려 하나둘 사라지고,

텅 비어 있던 내면은

오히려 더 넉넉해진

자비의 품을 닮아간다.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우고,

겸손 속에서 기쁨을 배우는 일.

그 단순하고 순수한 길을

가을의 빈들이

오늘도 나에게 가르쳐준다.

 

황량함 속에 충만이 있고,

침묵 속에 말씀이 있으며,

비어 있음 속에

하느님의 위로가 숨겨져 있음을.

 

가을의 빈들은

이렇게 나를 다듬고,

다시 걷게 하고,

다시 감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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