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다에 물든 현존의 신비
가을 바다에 노을이 물들면,
내 마음도 붉게 타오릅니다.
그 강렬함 속에 원천의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이내 잔잔한 위로가 번지며
모든 것을 감싸 안습니다.
이 순간, 바닷물에 비친
저 붉은 빛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입니다.
이 불꽃은
견딤과 기다림의 시간이 빚어낸
깊은 사랑의 증거이며,
영의 활동이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헛되지 않았던
모든 인고의 시간들이
빛으로 승화하여,
현존의 신비 안에 머물게 합니다.
그 신비는 모든 것을 생생하게 비추어,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에 깃든
영원한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봅니다.
자연 안에 숨 쉬는
작은 생명들 하나하나가
이 거대한 신비의 드라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오직 오감(五感)의 창을 활짝 열어
세상의 소리와 색깔, 맛과 향기를 받아들이며
하느님 나라를 손으로 만집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생명 그대로를 누리는 그 모습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낙원의 기쁨입니다.
바닷가에 서 있는 나 또한
이 모든 흐름 속에 있습니다.
불타는 그리움과 평화로운 위로,
견딤의 사랑과 현존의 신비,
그리고 오감으로 만나는 생명의 기쁨,
이 모든 것이 하나 되어
나의 영혼을 채우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