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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신앙에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나아가려는 모든 이에게

 

프란치스칸 신학자 리처드 로어의 신학적 통찰

 

리처드 로어가 영적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이단적 신학은 펠라기우스주의, 얀센주의, 완전주의의 신학입니다. 이들 공통 철학은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야 한다. 나는 할 것이다.”라고 하는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든 강조점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고, 내 노력과 영적 성취에 쏠려있습니다. 은총과 자비에 대한 의존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밀고 나가는 에너지는 불행하게도 조용한 확신과 감사 대신 두려움과 더 많은 노력인데 그것이 영성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꿔놓고 말았습니다. 말씀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사다리를 타고 기어올라 어떻게든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성취한다고 느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펠라기우스(350/360-418년경)에 의해서 파생된 펠라기우스주의는 자신의 의지력과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느님의 선택과 이끌어주심, 은총의 중요성과 그 보편적 효율성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교회들이 펠라기우스의 길을 따르고 있습니다. 주류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이 입술로는 은총과 자비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도덕적 행위와 성취에 인생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얀센주의는 네델란드 신학자이자 주교였던 고르넬리우스(1585-1638)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뢰보다 도덕적 엄정함과 정의로우신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했습니다. 하느님은 진노하시고 징벌하는 분이시고 그런 하느님을 입증하기 위하여 성서의 모든 구절이 동원되었습니다. 서양 그리스도인들,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그들 가운데서 실제로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17-18세기 프랑스, 벨기에, 네델란드, 이탈리아, 독일 가톨릭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전 세계의 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가톨릭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1715년 로마에서 공식적으로 이단 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하느님을 더 좋아합니다.

 

완전주의는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여러분도 완전해야 합니다.”(마태 5,48)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완전함은 인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신적인 개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당신의 말씀대로 원수들을 사랑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일러주기 위하여 인간의 의지로는 이 불가능한 명령에 복종할 수 없고 오직 우리를 통해서 흐를 수 있고, 흐르게 될 하느님의 완전하심에 복종함으로써 그럴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스스로 완전할 수 없고 하느님만 완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구절을 정반대로 인용하여 사람들에게 스스로 노력하면 완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넣어주었습니다. 이것이 전 세계의 수도회와 수도원에 말 못 할 상처를 입히고 실제로 완전함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로 하여금 수도원을 떠나거나 인격분열을 경험하게 만들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서는 이 구절을 이렇게 지혜롭게 옮겨 놓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이 여러분의 사랑에 경계를 세워서는 안 됩니다.” 경계를 세우지 않는 것은 은총과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방법입니다. 좀 더 열심히 노력하면 여러분도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신성한 자비보다 하느님의 정의를 강조하는 얀센주의는 두려움과 엄격함으로 영혼을 짓누르게 합니다.

 

진정한 복음은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내려가는 길입니다. 거절당하고 배반당하고 수난당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우리 구원을 위한 근원적이고 중심적인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순례길에서 우리에게 길이 되신 예수님을 따르고 닮아가는 과정으로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의 신적인 힘을 포기하신 내려놓음과 내려감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다리를 오르는 서양 문화와 움켜잡는 인간 에고가, 복음을 내려가기보다 올라가기 위한 메시지로 만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기어오르는 길이 아니라 힘을 포기하는 십자가의 내려가는 길을 택하셨으며 우리를 그 길로 안내하십니다. 우리는 잘한 일보다 잘못한 일들로 훨씬 더 하느님께 다가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실패들을 통하여 우리를 신성한 합일로 데려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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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칸들이 취할 태도는?

프란치스칸 영성은 로어가 말하는 '위쪽으로 떨어지기'의 가장 훌륭한 모범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삶 자체가 완전주의와 엘리트주의를 거부하고, 약함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겸손을 통해 자아를 내려놓기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인 내적 가난은 단순히 물질적 소유를 포기하는 것을 넘어섭니다. 이는 '나의 능력''나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적인 환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은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영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한계와 무력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 일하시고 채워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자기 노력과 성취에 대한 집착 내려놓고 도구적 존재로 살아가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찢어지고 상처 입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닮기

성 프란치스코는 십자가 위에서 상처 입은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었습니다. 이는 완전하고 성공적인 모습이 아니라, 약하고 고통받는 모습 속에서 오히려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내적 가난은 힘을 포기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내려가고, 내려놓고, 허용하고, 놓아주는 거기에 십자가에서 힘을 포기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칸들은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사회의 소외되고 찢긴 이들과의 일치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가장 약한 곳에서 빛난다는 것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넘어졌을 때 '일어나라'고 손을 내미시는 분이지, '왜 넘어졌냐'고 질책하시는 분이 아님을 기억하는게 중요합니다. 두려움이 아닌 사랑에 기반한 관계를 통해, 신앙생활에서 오는 평화와 자유를 경험하게합니다.

 

모든 피조물과의 형제애를 실천하기

프란치스칸의 보편적인 형제애는 얀센주의적 배타성을 완전히 거부합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하느님의 자비가 온 우주에 가득하다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두려움에 기반한 분리된 공동체가 아니라, 모든 존재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개방적 태도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하느님은 우리의 '행위'를 통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톨릭교회의 보편성은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인류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나와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자비가 세상 모든 이에게 미치고 있음을 믿고, 공동체와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과 나, 너와 나, 그리고 피조물과 나, 나와 나 사이에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이 나를 도구 삼아 관계 안에 흐르게 함으로써 이미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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