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그분께서 하늘을 세우실 때, 심연 위에 테두리를 정하실 때, 나 거기 있었다.”
지난주 성령 강림 대축일 지낸 우리는 이제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냅니다.
당연합니다.
성령 강림으로 삼위의 하느님께서 비로소 당신 전부를 모두 드러내셨고,
그래서 성령 강림 다음 주일에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냄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가> 해 <나> 해와 비교할 때 <다> 해의 삼위일체 대축일은
하느님께서 삼위일체로 우리를 창조하고 구원하신다는 것에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제가 좋아하는 연중 평일 감사송 3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 감사송에서 우리 전례는 이렇게 감사를 하느님께 올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인류를 창조하셨듯이
또한 인자로이 인류를 구원하셨나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창조를 제가 어려서부터 감사드리지는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시라는 것과 사랑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모르고
느끼지 못했을 때는 감사는커녕 원망과 분노를 하느님께 쏟아부었지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저의 집이 가난한 것에서 시작된 원망이
그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이 악한 것과 인생이 고해라는 것까지
원망과 분노는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였고, 하느님이 존재하시는가?
하느님이 사랑이시고 선하신 것이 맞는가? 의심에 의심을 거듭했지요.
악하고 고통뿐인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에 대해 감사드릴 수 없었고,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 할 제 인생에 대해 감사드릴 수 없었던 겁니다.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할 사람이 부모에게 자기의 태어남을 원망하고,
욥이 자기를 밴 어머니의 태와 태어난 날을 저주한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래서
삼위일체 사랑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된 것은
저의 인생을 그 전과 후로 바꾸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한 서간에서 얘기하듯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이시기에 삼위일체이십니다.
사랑하시는 성부와 사랑받으시는 성자와,
성부와 성자 간의 사랑이신 성령의 삼위일체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잠언서가 얘기하듯 하느님은 고독하게 혼자 창조하지 않으시고,
부모가 사랑으로 자녀를 태어나게 하듯 삼위 간의 사랑으로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지혜서 11장이 얘기하듯,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싫어하실 리 없으시고
참으로 사랑하신다고 믿는 것이 저의 믿음이고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삼위일체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는 것도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믿음은 사랑으로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고아로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 중에는 간혹 쾌락으로 아이를 낳고는,
남자는 아예 몰라라 도망치고 여자는 혼자 키울 수 없다며 버려버리는
그런 비정하고 무책임한 부모가 있지만 하느님은 그러실 리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실로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을 위해 성자와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어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을 따라 당신께 오게 하셨으며,
성령을 보내시어 그리스도께 우리를 인도하게 하셨다고
오늘 복음이 얘기하는데 삼위일체의 이 구원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