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화해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불문하시는 것인가?
그러니까 잘못했음에도 괜찮다고 하시는 것인가? 생각게 합니다.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용서 청하지 않아도 화해하신다는 뜻입니까?
이에 대해 저는 죄와 죄인의 관계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하느님이시어도 죄를 용서하진 않으실 것입니다.
죄인을 용서하시지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죄인을 용서하는 것은 종기를 떼어내기 위해 수술하듯
그에게서 죄를 떼어내는 수술을 하는 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죄 때문에 하느님과 화해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지레 포기하고
그래서 죄책감 때문에 하느님과 화해할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하는 우리인데
하느님께서 죄를 따지기까지 하시면 하느님과 화해를 완전히 포기하겠지요.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죄인이어도 우리와 화해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이어도 여전히 사랑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죄인이어도 당신을 사랑하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하느님의 사랑인데
그중에서도 우리 죄인의 사랑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죄인이어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아직 완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용서하고 싶고 그래서 얼마큼은 그를 용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사랑은 필요하지 않고 받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사랑만 있으면
그의 사랑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의 사랑이 여전히 싫기에 굳이 받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사랑에 비교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받길 원하시고,
같은 뜻에서 우리가 당신과 화해하길 원하시는 것은 참으로 큰 사랑인데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큰 사랑을 보여주셨고 우리가 알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런데 그다음입니다.
우리게 화해의 말씀이 맡겨졌고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이라고
바오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데 우리가 하느님과는 화해해도
이웃과는 정확히 얘기하면 원수하고는 화해하지 않고 있으니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절이요 그리스도 화해의 사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웃을 용서는 해도 그의 사랑은 받고 싶지 않은 것은,
완전한 용서도 아니고 온전히 화해한 것도 아닙니다.
용서하지 않고 있으면 내가 괴로우니 용서해 줘버리고 마는 것일 뿐입니다.
용서해 줘버리고 맒으로써 그와의 질긴 인연을 끊어버리려는 것이지
그를 사랑하는 것도 그를 죄에서 하느님께 돌아서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이라고 하는 바오로 사도의 도전을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요? 하며 거절하시겠습니까?
예! 하며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한칼에 거절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노력 좀 해보겠습니까?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