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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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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하고 겸손하신 하느님의 여성성

 

너무나 많은 이들이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진리를 따라 살기보다는 사교클럽 삼아 다니거나 인간 심성에 자리 잡은 종교심이라는 틀에 갇혀서 현세적 복락을 얻기 위해 기도와 희생과 재물을 바치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을 드러냅니다. 또한 자기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사랑보다 못한 하느님 사랑에 실망하여 냉담하거나 종교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 내면에 깊이 자리를 잡은 하느님에 대한 이미지는 남성적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남성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내면은 부드럽고 따뜻한 사랑, 섬세하고 푸근한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에너지에 훨씬 기울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어머니는 정서적인 내면의 세계를 열어주는 존재로 경험합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하느님한테서 받기를 희망하는 든든함과 친밀함, 부드러움과 안전함을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쓴 글에서 하느님은 부성과 모성을 함께 지니셨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러한 균형이 얼마나 소중한 하느님의 이미지 인가를 새삼 느낍니다.

 

창조의 이야기 안에서 하느님은 당신과 소통하실 형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봅니다. 하느님이 찾으시는 것은 당신의 내적 신비를 닮은 형상들로 창조한 우리에게 당신을 내어주시면서 낙원의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는 인간이 되신 하느님으로서 삼위일체 관계 안에서 내어주시는 하느님을 알게 하십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서 활기차고 사랑 어린 관계를 이루려면 내어주는 사랑에 내어주는 사랑으로 응답하는 선이 있어야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적 선에 참여하여 잃었던 낙원의 행복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내어주는 사랑의 이미지는 여성적이고 모성적인 하느님의 이미지를 더 잘 드러내 줍니다. 출산과 육아의 현장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예수께서도 성모님의 젖을 먹고 모성적 돌보심 안에서 성장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의 관계도 여성적인 하느님의 이미지 안에서 훨씬 수월하게 친밀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까지도 세심하게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관계 안에서 발견한 너의 필요를 채우려는 하느님의 돌보심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구원의 현장에서 절반은 여성적인 영의 활동이 차지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와서 배워라.”라고 하셨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은 여성적인 이미지에 훨씬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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