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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일 베르린 한인 성당 성모상(2019)

작가: 강동환 베드로 (1980-)

재료: 자연석 위에 청동

크기: 높이 100cm / 성모상은 165*140*125cm

 

      성당 앞에 성모상을 세우는 것은 우리 나라에는 흔한 일이지만 외국에서는 좀 예외적인 것인데 이것은 일리가 있는 것이다. 성모님의 존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개신교도들의 비난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 표현에 있어서 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의 내용와 신앙의 표현이 일치되는 것은 중요한데 성당 앞에 성모상을 세우면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 숭배교라는 오해를 스스로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성당 입구에 성모상을 세우게 된 것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한 프랑스 선교사들의 영향이었다.

 

그들이 선교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와 루르드 성모 발현이 일어나면서 여기에 대한 대단한 신심이 있었기에 한국 교회의 상징과 같은 명동 대성당 앞에도 루르드 성모상을 세운 것이 효시가 되었다.

 

이후부터 성당 앞에는 으련히 성모상을 세우는 것이 정착되었으나 오늘날 많이 달라져서 명동 대성당에도 성모상을 뒤마당 정원으로 옯기고 예수 성심상을 세우면서 신앙의 바른 표현으로 성미술을 배치하는 좋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면은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많이 생각해야 할 점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 세워지고 있는 성모상의 대종은 신앙의 내용을 담은 것이다. 무염시태 성모님, 파티마 성모님, 루르드 성모님 등 교회 역사 안에 보이고 있는 성모님을 모시면서 그 성모상이 주는 역사적 의미성을 반추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대 노인 병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루르드 성모님의 발현 축일이 교회안에서 병자들의 날로 정착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루르드 성모 발현은 생각하면서 성모님의 치유 은사가 환자들에게 전달되길 기도하는 신앙체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좀 특별한 성모상이 있는데, 바로 소개하고자 하는 성모상이다. 이 성모상은 보편 교회가 강조하는 성모님 가령 레지오 마리에 단원들이 모시는 성모 무염시태상이나, 루르드의 성모님, 메쥬고리 성모님 등 성모님의 발현과 관계되는 성모상이 아니라 독일 사회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의 역사가 담긴 성모상을 봉헌 한 것이다.

 

1960년대 중반 우리나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광부와 간호사라는 직종의 인력 수출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박정희 정부가 군사 혁명을 일으킨 후 미국을 위시해서 여러 나라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되면서 생긴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다.

박정희 정부는 민주 체제로 출범한지 일년도 채안되는 장면 정권을 부패의 탈을 씌워 군사 폭동 후 정권을 탈취했으나 이것은 핑계로서도 너무 구차한 것이었다.

 

장면 정권은 부패할 시간도 없었고 이승만 정권에서 억압되었던 국민 정서를 풀어 놓음으로써 일시적 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민주화를 향한 통과 의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을 혼란과 부패라는 탈을 씌운 것이다.

 

사실 장면 정권은 부패할 새도 없었고 국무총리인 장면은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던 총리였으니 오늘 같은 공직자 부패 상황에서는 상상도 못할 청렴한 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열강의 미움을 받아 어디에서도 돈을 얻기 힘든 처지에서 독일을 향해 원조를 요청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정권을 강탈한 박정희의 좋은 면이라면 국민을 굶기지 말아야 한다는 책임감과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독일을 찾게 되었다는 것은 잘한 일이라 볼 수 있다.

 

독일 정부는 돈을 빌려주는 댓가로 당시 독일 사회에 극심한 인력란이 있는 분야인 간호사로 광부를 요청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독일에 인력 수출이 시작되면서 독일 사회에서 한국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고 이때 온 교포들은 억척스럽게 일해서 우리나라에 대한 밝은 이미지를 심은 것 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큰 도움을 주게 되었으며 박정희 정부는 이것을 잘 사용해서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 땅에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파견된 우리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문화적 충격이나 여러 어려운 처지가 말할 수 없이 심각할 때가 있었고 이런 처지에서 종교는 큰 위안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베르린의 한인 교회도 1960년 중반에 베르린 교구에서 성당 사용을 허가받아 시작되었고 항상 그렇듯 처음엔 독일 사회와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사목자와 신자들 간에 갈등도 있었다.

 

다행히 교우 분들 중에 탁월한 인품과 독일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가지신 원로들이 있었기에 이분들의 노력에 힘입어 본당은 성장하게 되었고 특히 기업 특파원들과 유학생들이 늘어가면서 본당은 서서히 꼴을 갖추어 가게 되었다.

 

이 성장 과정에서 어떤 자매님은 그의 독일 생활에서 익힌 이해와 언어적인 도움으로 독일 사정과 언어에 어두운 교민들에게 종교에 구분없이 사랑과 도움을 베풀어 가톨릭 교회가 교인들 만의 교회가 아닌 하느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표현하는 성숙한 종교 공동체의 인상을 베르린 뿐 아니라 독일 전체 한인 사회에 심을 수 있었다.

 

공동체 시작 50주년이 가까워지면서 교회는 양적 뿐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고 초기에는 인품과 독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닌 평신도들의 도움으로 이끌어 졌다면 이때부터 참으로 독일 사회에 꼭 필요한 사목적 역랑을 지닌 사목자들이 등장하면서 신자들에게 큰 힘을 심어주게 되었다.

 

이런 아름답게 어우러진 분위기에서 성모상 건립의 의견이 나오게 되었고 독일 한인 사회의 정황을 반영할 수 있는 성모상으로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삶을 담자는 획기적인 제안이 나오게 되었다.

 

사목자와 평신도들의 어우러진 상태에서 나온 이 제안은 참으로 대단하면서도 예언적인 것이었다.

 

가톨릭 교회의 특성이 보편성 표현에 있으나 이 면이 너무 강조되다 보면 각 지역 교회의 특수성을 담기 어렵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세계 어디에도 꼭 같은 성모상으로 보편성을 증거했으나 그 지역 사회의 특성을 담기 어렵단 아쉬움을 남겼는데 백림 한인 공동체의 이 성모상은 독일 한인 공동체의 역사를 담았다는 것이 대단한 면으로 부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이런 과정에서 이 성모상의 제작 역시 본당 신자가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애국가의 가사처럼 성미술에 대해선 좀 열악한 면이 있으나 이 본당 교우로서 우리나라와 독일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가 이 작품을 맡게 되었다.

 

작가는 통념적인 보편성을 강조하는 성모상이 아닌 독일 한인사의 중요 장면을 재현하는 형태의 성모상을 제작하면서 광부와 간호사라는 독일에서 일하고 있는 특정 집단을 한국인의 모델로 등장시켰다.

 

광부는 보통 지하가 작업 공간으로 되어 있으나 작가는 계단을 만들어 그 계단을 오르면서 성모님의 손을 잡는 장면으로 구상했다.

 

이것은 외국 경험이 일천한 초기 한국인들이 의지할 곳은 바로 성모님으로 등장하는 하느님께 매달리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성모님의 얼굴 역시 통념적으로 표현되는 백인이 아닌 동양인의 모습으로 했으나 우리의 특정을 너무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한복이나 족두리 차림의 성모님이 아니어서 교회가 지닌 성모 이미지에 혼란을 주는게 아니었다.

 

이 성모상은 서양 성화에 자주 등장하는 자신의 망토속에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어머니처럼 품는 성모님의 모습으로 표현하면서 한국적 개체성의 표현이 신앙 표현의 혼란을 주는 것 같은 위험을 미리 배제했다.

 

등장하는 광부와 간호사의 표정 역시 좋은 일은 하지만 삶에 찌들린 모습이 아닌 성모님을 통해 신앙이 주는 위안과 희망에 부픈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성모님은 계단을 올라 다가온 간호사의 손을 잡아주고 한손으로는 광부의 뒷부분을 잡으면서 이들을 격려하고 보호하는 몸짓을 하고 계신다.

 

한마디로 성모님으로 표현되는 교회의 표상이 새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간호사와 광부들에게 큰 힘이 되었고 이들의 이런 선행을 통해 한국 경제가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이 성모상이 제작되는 과정을 통해 이 공동체의 성장을 확인하는 것 같아 대견하다.

 

처음 시작된 한인 사목에 경험이 없던 사목자들이 시행착오적인 문제를 만들어 교회 공동체의 혼란이 있었지만 넉넉한 인품과 독일 사회를 이해했던 원로 평신자들의 도움으로 극복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사목자들 역시 더 성숙한 목자들의 모습으로 공동체가 커지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멋있고 향기롭게 풀어나간 모습을 보이는 것이 대견스럽다.

 

이 성상 제작을 결정했던 사목자가 전근되면서 새 사목자가 맡게 되었으나 그는 달라진 환경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전임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려 구체적인 실천에 옮겼기에 이 성모상의 제작이 가능했다.

 

      허나 아쉬운 면도 없지 않다. 공동체의 규모나 유학생들이 많은 공동체이기에 자금 확보가 쉽지 않았던 면도 있어 작품이 규모에 있어 좀 작다는 아쉬움과 함께 기존의 성당 건물과 조화가 좀 어색하다는 면도 있다.

역시 기존의 성당이 전혀 한인 공동체와는 무관한 다른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기에 독일인을 위한 교회 건물이었다는 것을 이해하면 좀 부조화의 모습이 오히려 교회의 특성 서로 다른 것을 어우르지게 만드는 보편성의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튼 이 성모상을 통해 독일의 한인 가톨릭 공동체가 한인 사회의 역사를 자기들의 성상 제작에 표현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예언적인 행위라 볼 수 있다.

 

얼마 전 로마 베드로 대성당 마지막 남은 벽감에 김대건 성인의 성상을 모셨다는 낭보가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나라 성인이 세계 교회의 상징과 같은 베드로 대성당에 모셔졌다는 민족적 기쁨 이상의 가톨릭 교회의 위상이 더 격상되었다는 것과 관계되는 것이다.

 

교황님이 성탄절과 부활절에 온 세상을 향한 축복의 시간에 바치는 기도를 로마와 전 세계 (Urbi et Orbi)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데, 김 안드레아 성인의 동상이 대성전에 모셔짐으로 전 세계라는 표현이 훨씬 더 폭을 넓히게 되었다.

 

그전까지 전 세계라는 것은 유럽 사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나 성 김대건 안드래아 성인의 성상을 베드로 대성당에 안치함으로써 교황님의 인사는 아시아를 통해 미지의 세계까지 확장되는 교회의 보편성 표현에 대단한 기여를 하게 되었다.

 

베르린 성당의 성모상을 베드로 대성당의 김대건 성인상과 비기는 것은 격이 맞지 않는 과찬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복음적인 관점에서 보면 큰 것 못지않게 작은 것의 보석과 가치를 증거하고 있다는 면에서 충분한 감동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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