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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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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지금까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복음을 읽을 때

제가 주님처럼 누군가를 동반하는 관점에서 주로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는 주님의 동반을 잘 받고 있는지 성찰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도원 부활절 연중행사로 엠마오를 많이 다녀오긴 하였지만

봄나들이 식의 연중행사였지 주님께서 진정 제 인생의 동반자임을

성찰하는 그런 엠마오 성찰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여정은 회개의 여정 또는

방향전환의 여정이라고 이번에 저는 묵상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방향 전환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으니 말입니다.

 

주님의 돌아가심으로 두 제자는 제자의 꿈이 좌절되었다는 절망감에

무작정 예루살렘을 떠났는데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걸으시며

깨닫게 하심으로 다시 제자들의 공동체에 합류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공동체를 떠난 것이 잘못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없는 제자들의 공동체는 공동체도 존재 할 이유가 없지만

존재할 이유가 없는 공동체에 두 제자가 있어야 할 이유도 없는 거지요.

 

사실 우리 수도 공동체도 많은 사람이 이런 이유로 떠납니다.

자기가 자신이 없어서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공동체가 희망이 없거나 사랑이 없어서 떠난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근본적으로 하느님이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안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디든지 계시는 하느님이 우리 공동체엔 안 계실 리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느님이 우리 공동체에 안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없이 살아가는 자기가 공동체에도 하느님이 없다고 보는 거지요.

 

사실 많은 경우 내 안의 절망이 공동체의 희망도 보지 못하게 하듯

내가 하느님 체험이 없기에 공동체 안에 계신 하느님도 못 보는 겁니다.

 

이것은 남 얘기가 아니라

제가 수도원을 떠날 때의 경험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수도원을 떠날 때는 프란치스코가 싫어서 떠난 것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는 너무도 멋지고 그래서 저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우선

제가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고, 공동체도 저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을 나와 몇 달을 사는데

어느 날 부자 청년의 얘기를 읽으면서

오늘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깨달음이 오면서 하느님도 같이 제게 오셨습니다.

 

저의 성소 안에서 강한 하느님 체험이 없었기에 하느님 없이 살아왔고

하느님이 제 안에 안 계셨기에 저에게서도 공동체에게서도

희망을 제가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제가 수도원을 떠나지 않고 산 것은

제가 자신이 있어서 산 것도 아니고 공동체가 훌륭해서 산 것도 아니며,

오로지 하느님께서 부르셔서 산 것이고 하느님의 힘으로 산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유턴하게 하신 하느님이

저도 유턴하게 하신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유턴하여 수도원에 돌아가니

오늘 복음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제자들 공동체에 돌아갔을 때 그때에야

제자들이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라고 하듯이

저도 그때에야 공동체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엠마오의 제자들과 저뿐 아니라 우리 신자들도 너무 실망하여

주님의 교회/공동체를 떠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놈의 교회엔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될 때 하느님이 진짜 그 교회 안에

안 계신 것이 아니라 교만의 눈이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을 못 보게 하는

것임을 오늘 제자들처럼 깨닫게 되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오늘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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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20.04.15 06:17:25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20.04.15 06:16:44
    19년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엠마오를 다녀오셨나요?)
    http://www.ofmkorea.org/210263

    18년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우리는 왜 마음이 굼뜰까?)
    http://www.ofmkorea.org/120199

    16년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내가 가진 것은?)
    http://www.ofmkorea.org/88201

    15년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내가 가진 유일한 것)
    http://www.ofmkorea.org/76801

    14년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금보다 귀한)
    http://www.ofmkorea.org/61610

    13년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영의 눈을 멀게 하는 절망)
    http://www.ofmkorea.org/52559

    12년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엠마오를 가자!)
    http://www.ofmkorea.org/5717

    10년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동행)
    http://www.ofmkorea.org/3876

    09년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왜 예수님을?)
    http://www.ofmkorea.org/2389

    08년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동행과 동감)
    http://www.ofmkorea.org/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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