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270 추천 수 2 댓글 2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우리의 전례는 어제까지 다윗에 대한 사무엘기의 얘기를 다 들려준 뒤

오늘 집회서를 들려주는데 이것은 집회서를 통해 

다윗의 삶을 종합적으로 들려주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복음은 헤도데에 대한 얘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 왕을 비교하게 되는데 공통점은

둘 다 왕이라는 것 말고도 둘 다 죄를 덮으려고 했던 점입니다.

 

다윗은 간음죄를 덮으려고 살인죄를 지었고,

헤로데는 잘못을 들춰내는 요한을 죽였지요.

 

사실 죄를 덮으려는 것은 이 둘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

그러니까 저나 여러분 모두에게 공통적인 거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죄는 씻어버리거나 치워버려야지 덮어버려서는 안 되는 거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죄는 씻어서 버리든 치워서 버리든 버려야 하는 것인데

덮어버리는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남는 거지요.

 

그래서 다윗과 헤로데는 덮으려고 했던 것까지는 같지만

다윗의 끝은 회개이고 헤로데의 끝은 여전히 죄인 것이 차이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작의 다른 결말>의 이유,

그러니까 시작은 같은데 이렇게 결말이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은 하느님 앞에 서 있고, 헤로데는 인간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나탄 예언자의 말을 듣고 하느님 앞의 자신을 봤지만

헤로데는 요한을 예언자라고 알고 있었음에도

그의 말을 듣고 하느님 앞에 서려고하기보다 사람들 앞에 있었습니다.

오늘 연회에 온 손님들 앞에서 체면을 차리려고 했던 헤로데였지요.

 

사람들 앞에서의 죄는 덮거나 숨기고 싶기 마련이고,

하느님 앞에서의 죄는 뉘우치고 씻어버리게 되지요.

겉뿐 아니라 오장육부까지 샅샅이 아시는 분에게 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 선 다윗은 죄를 뉘우치고 씻어주십사고

청원 기도를 할뿐 아니라 이제 씻어주신 하느님께 찬미의 기도를 바칩니다.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거룩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

 

그러니까 청원의 기도는 죄를 지었어도 가능하고,

근심과 걱정이 있을 때도 가능합니다.

죄를 용서해달라고 자비를 청하고 근심 걱정에서

건져주십사고 기도할 수 있지요.

 

그러나 찬미의 기도는 죄와 근심 걱정이 있을 때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죄가 나를 짓누르고 근심 걱정이 나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씻어버리고 근심 걱정을 치워버린 깨끗한 영혼의 입에서만

찬미의 기도가 흘러나옵니다.

 

재물이 없는 가난과 욕심이 없는 것도 가난이지만 실은

죄와 근심 걱정을 다 치워버리고 없는 것이 가난입니다.

순결과 가난은 이렇게 통하고 일치합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지가지의 죄를 짓고 덮으려던 다윗이,

그러나 하느님 앞에 섬으로써 그렇게 깨끗하고 가난하게 되고,

그래서 찬미의 시를 짓고 노래를 할 수 있었던 다윗이 부러운 오늘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20.02.07 07:32:36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성체순례자 2020.02.07 07:32:00
    19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사랑에 젖어)
    http://www.ofmkorea.org/193928

    17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http://www.ofmkorea.org/98767

    16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생활기도와 성사적인 일)
    http://www.ofmkorea.org/86706

    15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사람마다 다르신 같은 주님)
    http://www.ofmkorea.org/74633

    14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내가 바로 작은 헤로데)
    http://www.ofmkorea.org/60121

    13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혹시 내가 헤로데와 헤로디아처럼?)
    http://www.ofmkorea.org/50712

    12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http://www.ofmkorea.org/5544

    10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어처구니가 없어서는 아니 되지)
    http://www.ofmkorea.org/3607

    09년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영원한 현재이신 예수 그리스도)
    http://www.ofmkorea.org/2080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15Sep

    2026년 9월 16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루카 7,31-35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장터의 변덕스러운 아이들에 비기십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다.” 무엇을 해 주어도 트집을 잡습니다. 세...
    Date2026.09.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104
    Read More
  2. No Image 15Sep

    고통의 성모 마리아 축일-고통을 함께하는 사랑

    오늘 고통의 성모 축일을 지내면서 저의 사랑을 성모님의 사랑과 비교하며 성찰해 봤습니다.   지금의 저는 옛날의 사랑과 비교할 때 참 좁아졌습니다. 옛날에는 저 지구 반대편의 고통까지도 함께하려는 사랑이었는데 지금의 사랑은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을 ...
    Date2026.09.15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495
    Read More
  3. No Image 14Sep

    2026년 9월 15일 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요한 19,25-27 어제 우리는 십자가를 높이 들어 우러렀습니다. 오늘 교회는 그 십자가 ‘곁에 서 계신 분’을 바라봅니다. 복음은 짧지만 그 첫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성모...
    Date2026.09.14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128
    Read More
  4. No Image 14Sep

    성 십자가 현양 축일-사랑을 볼까, 고통을 볼까?

    오늘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런 묵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신자들 가운데는 두 부류의 신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주님의 고통을 보는 사람과, 주님의 사랑을 보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보...
    Date2026.09.14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463
    Read More
  5. No Image 13Sep

    2026년 9월 14일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요한 3,13-17 오늘 우리는 십자가를 ‘현양(顯揚)’합니다. 현양이란 ‘높이 들어 올려 우러른다’는 뜻입니다. 사형 틀이었던 십자가를 도리어 높이 들고 소중히 여기는 까닭은, 그 위에서 ‘가장 큰 사랑’이 드러났기 ...
    Date2026.09.13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99
    Read More
  6. No Image 13Sep

    연중 제24주일-아직도 분노의 폭약과 복수의 칼을?-밑에 댓글에서 보세요.

    Date2026.09.13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245
    Read More
  7. No Image 12Sep

    2026년 9월 13일 일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마태 18,21-35 베드로는 제법 넉넉한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됩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흔일곱 번’ ― 곧 ‘세지 말고, 끝없이’ 용서하라 하십니다. 용서만큼은 ‘아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비유가 ...
    Date2026.09.12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229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1606 Next ›
/ 1606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