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행위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하는 쪽을 선뜻 선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몸은 편한 것을 추구하지,
움직임을 통해 지치고 피곤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하려면 힘을 내야 하는데,
그 일을 통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이
합리저긴 방식이라는 생각이
우리 안에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얻는 것에는
물론 물질적인 것도 있지만,
사람들의 인정, 칭찬, 사랑, 관심 등
물질적이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즉 일을 통해서 자기가 누구인지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어떤 하나의 역할을 하면서
그 안에서 자기 만족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면이 있는 반면에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습니다.
상황이 바뀌면서
그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일을 통해 얻어 왔던 것을
더 이상 얻을 수 없다보니,
스스로 쓸모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한 스스로 예상 했던 것만큼
얻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일을 더 이상 계속할 힘을
잃어 버리기도 합니다.
자선을 베풀고 기도와 단식을 해야한다는 것이
그래서 더 힘이 드는 것 같습니다.
선의를 베푼 사람에게
칭찬을 듣기보다는, 감사의 말을 듣기 보다는,
왜 이것 밖에 주지 않느냐는 식으로
비난을 들으면서도,
그 자선을 계속 이어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갚아 주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풍요,
사람들의 인정, 칭찬,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내가 무엇을 해서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받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국 그 보상은
하느님과의 관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선 행위를 통해서 하느님의 선을 나누고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드러나시고
그렇게 하느님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와 단식 역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행위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나를 한 사람으로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상대방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이것은 일을 통한 정체성보다
더 확실한 것입니다.
그렇게 나는 사랑의 대상,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될 때,
사람들에게서 오는 인정이나 칭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를 향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 나 자신을 인정해 주시고
사랑해 달라고 청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랑 속에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