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마르코 복음의 부활기사는 뭔가 엉성하거나 이상한 느낌입니다.
이런 거지요.
너무 간단하다.
똥을 누다가 만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얘기다.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는 얘기뿐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주님 부활에 대해 제자들이 믿게 된 얘기가 중요한데
다른 복음들처럼 어떻게 믿게 되었다는 얘기는 없고 왜 이리 짧게,
그리고 믿지 않았다는 얘기만 하고 끝을 맺을까요?
그리고 믿음이 없는 제자들에게 왜 복음은 선포하라고 사명을 주실까요?
우리는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 일을 안 맡기는 것이 보통이 아닙니까?
그런데 믿지 않는 제자들 얘기만 짧게 한 이유가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제자들에게도 주님 부활을 믿는 것이 어려웠으니
저의 부활 신앙이 약한 것도 저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고
그래서 마르코복음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기술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그리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주신 얘기도
믿지 못하는 우리도 언젠가는 복음을 선포하라고 사명 주시는 것으로
이해가 되며 이런 우리에게도 사명 주심에 감사케도 됩니다.
그리고 사명 주심에 감사하는 것은 믿지 못하는 우리를 믿어주시고,
지금 믿지 못하지만 앞으로 믿게 될 것이고 그래서
지금은 복음 선포를 못하지만 언젠가는 복음 선포자가 될 거라고
믿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은 주님의 사명 수여이기도 하지만 유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믿지 않는 제자들이 믿고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믿고 복음을 선포하라는 말씀이지요.
우리도 자식들에게 유언을 한다면
지금 하느님을 열심히 믿지 않지만 신앙생활 열심히 하라고 할 것이고
하느님을 열심히 믿게 되면 좋은 일도 많이 하라고 유언을 하겠지요?
주님께서도 유언의 시점에서는 믿지 않는 제자들이지만
믿게 될 미래를 내다보고 믿어주시는 것이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유언으로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내다보는 믿음이란 가능성을 믿는 믿음입니다.
‘너 지금 하는 것 보면 싹이 노랗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만 보면 계속 믿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는 분명 믿게 될 거라고 그 가능성을 믿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철이 들면 그리 될 거라고 믿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 철이 들게 해주실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에도 철이 있는 것입니다.
겨울철의 믿음이 있고,
봄철의 믿음의 있으며,
여름과 가을철의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철들게 하시는 주님께서
믿음의 철을 주관하시도록
지금 믿음 없음에 조바심하지 말고
주님께 믿음마저도 맡겨드리며
남이든 자식이든 느긋하고 너른 마음으로 믿어주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