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순절을 맞이하며 드는 느낌은 <드디어 왔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그랬겠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사순절을 맞이하며
전투를 앞둔 군인의 긴장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드디어 왔다는 것이 보통은 사람이나 물건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마침내 왔다는 것인데 이번 저의 경우는 사람이나 물건이 아니고
기다리고 준비한 사순절 전투의 시간이 마침내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긴장감이 들었던 것도 바로 전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사순절을 저는 전투의 시기로 맞이한 것인데
깊이 숙고하고 그러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리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성찰을 했습니다.
사순절을 전투의 시기로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사순절을 맞이하는 태도로 이것이 맞는 것인지.
성찰한 결과 이런 생각과 태도는 맞지 않은 거였습니다.
이것이 아주 틀린 것이 아니고 해야 할 것이기도 한데
맞지 않다고 제가 하는 것은 이번에 제가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전투란 악습이 있는 사람은 악과 싸우고
살이 찐 사람은 살과의 싸움을 하는 것인데 은근히
저도 그런 전투를 해야 한다고 무의식 안에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제 안에 밴 것이고 오래된 무의식인데
사순절이 되면 술 담배와 성관계를 끊던 어른들을 보고 배워
저도 뭔가를 끊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그런데 그 전투를 하고 싶지 않은 유혹이 있기에
그 유혹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등장하는 것들은 끊어야 할 욕망, 악습이고,
이런 것을 피하고픈 유혹이며 이런 것에 맞서야 한다는 전투의식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순시기에 마주 서야 할 것이 이런 것들과 맞서는 것뿐이고
하느님은 빠져도 되는 것, 하느님과는 마주 서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지요.
악과 맞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느님 앞에 서는 것이고,
악과 맞서는 것도 하느님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어야 하지요.
이것이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바인데
오늘 주님께서는 세 번이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자선이나 기도나 단식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지 말고,
또 자기 유익이나 이익이나 만족의 차원에서도 하지 말며,
하느님 앞에서 하고, 하느님 사랑을 위해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태 전에 썼던 사순절 표어를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Coram Deo/ 하느님 앞에서>
그러면서 이슬람 신자들의 라마단 의식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같이 학교 다니던 이슬람 친구들이 있었는데
많지 않았지만 이들이 나라들이 서로 다르고 그래서 어쩌면
수니파-시아파로 서로 적대적인 관계일지 모르지만
라마단 기간이 되면 낮 시간에 굶는 것은 물론 시간이 되면
자기들끼리 매트 하나씩 들고 빈 교실을 찾아가서
같이 동쪽을 향해 절을 하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식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고,
그것을 혼자도 하지만 같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싸우던 것을 멈추고 하느님 앞에 같이 서는 그들의 라마단이
저와 여러분이 같이 지내야 할 사순절이고
<Coram Deo>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